그날 이후, 나는 손드는 법을 잊었다.
화가 난 교사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는 부끄러움보다 자책이 더 컸다.
그날도 나는 조용히 책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네” 하고 대답했지만,
곧이어 몸이 덜컥 굳었다.
“일어나 봐.”
그 말에 나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
“너 하나 때문에 반 평균 깎아먹는 거 아냐?”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순식간에 교실이 숨을 죽였다.
선생님의 말은 나를 향했지만, 그 말은 반 전체를 향한 연설처럼 들렸다.
나는 교실의 중심으로, 창피의 무대 위로 끌려 올라온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안경을 벗어던졌다.
책상 위에 떨어진 안경다리가 ‘딱’ 하고 울렸다.
그 소리가 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나는 그 순간부터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뒷목이 뜨거워졌고, 손끝이 떨렸고, 발바닥에 감각이 사라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명도 하지 못했고, 고개를 숙이기도 애매한 채
그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 장면이 지나가는 10초는 시간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나는 나 자신보다 반 전체의 시선을 더 의식했다.
이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저 아이가 지금 속으로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나를 교실 전체의 민폐로 만들었다.
“넌 할 수 있어.”
그 말은 어른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의 “넌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는 말은
기대가 아닌 비난, 응원이 아닌 징벌이었다.
나는 할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해보고 싶었을까.
누구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왜 늘 뒤처지는지, 왜 질문을 두려워하는지,
왜 문제집을 펼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지를.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대신 단정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아이.”
그리고 나는 그렇게 게으르고 민폐인 존재로 확정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시도하는 법을 잃었다.
손들고 질문하는 법,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법,
그리고 누군가 앞에 서서 내 생각을 말하는 법을 잃었다.
자존감은 조용히 땅에 떨어졌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나를 자책하는 목소리 뿐이었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넌 할 수 있잖아”라고 말하면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건 예전부터 나를 몰아세우던 그 말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말은 때로 가능성을 말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폭력을 가장한 기대가 되어
사람을 부수기도 한다.
나는 그 교실에서
무능한 아이가 아니라
무시당해도 되는 아이가 되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건 참 오래도록 버리지 못한 습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