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날의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나요?
왕따가 누구냐는 질문은, 정답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지목을 강요하는 말이었다.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담임이 갑자기 교탁 앞에 섰다.
아이들은 간식 이야기, 조 편성 이야기로 분주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교실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우리 반 왕따 누구니?”
그 말은 마치 농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졌다.
하지만 교실은 웃지 않았다.
모두가 그 말이 진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질문이 아니라, 확인사살이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슬쩍 쳐다봤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내 쪽을 흘끗 보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필통을 정리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다.
대답은 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이름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침묵 속에 진실이 있었다.
누구도 나를 가리키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왕따’라는 단어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그건 누가 정해준 이름이 아니라,
교실 전체가 동의한 위치였다.
나는 그 자리를 선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의 조용함, 나의 기이함,
나의 분위기, 나의 말투, 나의 가족사까지—
모든 것이 그 자리를 정당화해 주는 증거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 질문이 교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
이 교실에선 내 말보다 선생의 말이 ‘진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은 당연히 즐겁지 않았다.
버스에서도, 숙소에서도, 조별 활동에서도
나는 투명한 존재처럼 취급되었고,
사진을 찍을 땐 내가 아닌 내 주변만 잘려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친구를 사귀는 일에 더 조심스러워졌고,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까 두려워졌고,
무리에 들어가는 것보다 혼자인 게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 질문 하나가
내 안의 말들을, 표정을, 그리고 웃음을 다 얼어붙게 만들었다.
‘우리 반 왕따 누구니?’
그건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고
낙인이며, 공공연한 지목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교실이 괜찮은 공간이었던 건 아니다.
그 교실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침묵의 감옥이었고,
선생은 그 감옥의 자물쇠를 확인하며 웃고 있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