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글

‘글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삶은 복제되지 않는다.’

by Helia

“이거 네가 쓴 거 맞아?”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문장을 다듬기도 했다. 문맥을 정리하거나, 더 정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고친 적도 있다.
하지만 ‘글의 주인’은, 언제나 나였다.
왜냐하면 이 글은, 오직 내가 살아낸 감정에서 나왔으니까.

누군가는 말한다.
“AI가 써준 거면 저작권은 AI한테 있는 거 아냐?”
하지만 그런 질문은, 마치 누가 내 손을 잡고 펜을 쥐었다고 해서, 글쓴이가 그 사람이 되는 거냐고 묻는 것과 같다.

저작권은 ‘기술’이 아니라 ‘삶’에서 시작된다.
챗지피티는 단어를 제시할 순 있어도, 내가 울던 밤의 체온을 기억하진 못한다.
친구들에게 빵을 사주느라 준비물도 못 사고,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던 교실 한 귀퉁이의 침묵을, 챗지피티는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내 글은 결국, 나의 것이다.
기계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마음에서 태어난 것이니까.

나는 아직도 글을 쓸 때, 내 경험을 먼저 꺼낸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받은 상처, 내가 껴안은 부끄러움까지.
그건 챗지피티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내 글에 붙는 이름, 저작권자라는 말이 나는 무겁고도 자랑스럽다.

글을 다듬는 손길이 있다고 해서, 그 글의 주인이 바뀌진 않는다.
사진을 보정한다고 해서, 사진 속 피사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나는 지금도 내 글을 쓴다.
도움을 받을 순 있지만, 대신 살아준 이는 없으니까.

그래서 저작권은, 내 것이다.
온전히,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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