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동생이라 부른다.
나는 오랫동안 외동인 줄 알고 자랐다.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외가에서 지냈고, 엄마는 가끔 들르는 손님 같았다. 아빠는 존재조차 몰랐다.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 들어가기 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엄마 집’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엔 낯선 아저씨와, 내 또래의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소개했고, 그 아이를 내 동생이라고 했다.
동생이 생긴다는 건 어릴 적의 나에겐 꽤 반가운 일이었다. 혼자 노는 건 외로웠으니까. "내 동생"이라는 말이 좋아서, 나는 그를 금세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가족이란 이름의 울타리 안에 들어섰고, 그 안에서 잠시나마 우리 넷은 가족처럼 살았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폭력은 생활이 되었고, 엄마는 결국 그 집을 빠져나왔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도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동생은... “아빠가 불쌍하잖아”라는 말과 함께 그 집에 남았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뭔가 놓친 느낌이 들었다. ‘불쌍하다’는 이유로 동생은 아빠를 선택했고,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선택지에도 없었던 사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누나, 내 친누나 아니잖아?”
핸드폰을 붙잡은 손이 떨렸다.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고,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며 자랐고, 내가 먹다 남긴 과자를 몰래 집어먹던 그 아이.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말이었다. 아빠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진짜 가족’이 아니게 되었다.
그 문자 이후, 동생과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연락도, 안부도, 생일 메시지도 없었다. 동생은 공부를 잘했고, 운동도 잘했고, 친구도 많았다. 나는 늘 반에서 꼴찌였고, 친구 하나 없었다. 축 처진 어깨와 늘어진 교복으로 뭉쳐진 아이. 복도에서 마주쳐도, 그는 나를 모른 척했다. 그게 더 아팠다. 낯선 사람도 아닌데, 낯선 사람보다 더 낯선 태도.
‘내가 부끄러웠던 걸까?’
‘친구들 앞에서 꼴찌 누나가 창피했던 걸까?’
이복남매라는 단어가 그렇게 큰 벽이 되는 건지, 나는 몰랐다. 아니, 모르고 싶었다. 나는 그냥 그 아이를 내 동생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그렇다. 연락이 끊겨도, 이름 석 자를 불러볼 일이 없어도,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내 동생’이라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오래 비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그 아이가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서로 모른 척 지나치는 남보다 먼 남매로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말이 꼭 함께 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도 가족일까.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다른 기억을 가진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그 답을 알 수 없어도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동생’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