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투명한 시간의 중심에서
아침은 늘 여유롭다. 알람 없이 잠에서 깨어나 창문 너머의 햇살을 느끼며 한참을 누워 있는 시간. 늦잠을 즐긴다는 표현보다, 어쩌면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빠르게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은 아침. 한 템포 느린 하루가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
천천히 일어나 물을 데우고, 좋아하는 잔에 음료를 따른다. 책을 펼쳐 들고, 멍하니 한 줄씩 읽는다. 때로는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어도 억지로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오가 가까워진다. 하루의 가장 중심이자, 나에게는 가장 투명한 순간이 도착한다.
정오는 오전과 오후가 손을 맞잡는 시간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중간의 자리. 어쩌면 가장 애매한 시간 같지만, 그래서 더 정직해지는 시간이다. 아직 오늘이 남아 있고, 어제가 그리 멀지 않은 이 한가운데에서 나는 늘 나를 만난다. 바쁘지 않아서 좋고, 조용해서 좋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어디에도 쫓기지 않는 정오. 세상의 시간은 흐르는데, 나만 멈춘 것 같은 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온도를 느낀다.
이 시간의 햇살은 특별하다. 새벽의 차가움도, 오후의 지침도 없이, 그저 맑고 따뜻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바닥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쌓여 있던 생각의 먼지가 조금씩 흩어지고, 나는 조금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누군가의 손짓처럼, 정오의 빛은 말없이 나를 안심시킨다.
때로는 정오가 잔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지나간 아침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 앞으로 남은 오후에 대한 불안이 겹쳐지면 이 시간은 더 이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도 정오는 묵묵히 나를 받아준다. 판단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도록, 잠시 앉아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시간. 그 온도가 나를 붙잡는다.
나는 종종 이 시간에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따뜻한 햇살 아래 골목길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돈된다. 누군가는 바쁘게 점심을 먹고, 누군가는 햇빛을 피해 그늘로 숨는다. 정오는 모두에게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건, ‘지금 여기’의 나 자신이다.
정오는 하루를 나누는 시간임과 동시에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시간이다. 시작의 의욕과 끝의 피로 사이, 아무것도 기대받지 않는 그 애매한 순간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본연에 가까워진다. 숨을 고르고,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는 시간. 그래서 나는 정오를 좋아한다.
어떤 날은 이 시간을 침대에서 맞이하고, 어떤 날은 햇빛 가득한 카페에서, 또 어떤 날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가 흘려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날의 정오는 소중하다. 그건 마치 매일 찾아오는 작고 단단한 위로 같다. 특별하지 않아도,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어떤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시간.
정오는 말한다.
“지금의 너도 괜찮다.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말을 가만히 마음속에 새기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오후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정오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