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 남은 고소한 위로
오독오독. 혀끝에 닿는 고소함을 지나, 혀 밑으로 스며드는 담백한 향. 볶음 해바라기 씨를 벗겨 먹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놀이 같았다. 사소하지만 집중이 필요한 동작, 손끝에 느껴지는 껍질의 거칠음,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는 조그만 알맹이 하나. 별거 아닌 것에 푹 빠질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게 무척 좋았다.
볶음 해바라기 씨는 입이 심심할 때 자주 찾게 되는 간식이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한 줌을 입에 털어 넣었지만, 어느새 나는 껍질을 하나하나 손으로 까고, 알맹이만 골라내어 천천히 음미하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물론 껍질째 씹어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 해바라기 씨는 ‘벗겨 먹는 재미’가 핵심이었다. 그 조그맣고 질긴 껍질을 손톱으로 톡 꺼내며 얻어내는 작은 알맹이 하나, 그것이 주는 성취감이란 얼마나 소박하고 근사한가.
어릴 적, 어른들이 마른오징어나 멸치를 손질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며 '왜 저렇게 손이 많이 가는 걸 굳이 먹을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볶음 해바라기 씨 앞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집중력 있게, 더 정성스럽게 알맹이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간식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작은 휴식이자 놀이였다. 하루 중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랄까.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행위는 마치 퍼즐을 맞추거나, 실타래를 푸는 것과도 비슷했다.
하나씩, 하나씩. 이 간단한 동작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다스려준다. 마음이 복잡할 때도,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도, 나는 해바라기 씨 봉지를 열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손은 쉴 새 없이 씨앗을 까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졌다. 손끝에 몰두하며 오히려 머릿속의 쓸데없는 생각들이 빠져나가던 것일까. 해바라기 씨는 작지만 강력한 ‘정신의 진정제’였다.
게다가 이 작은 알맹이엔 고소함과 따스함이 녹아 있다. 딱딱하고 거친 껍질을 벗겨야만 닿을 수 있는 속살 같은 맛.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 맛있게 느껴졌고, 그 맛은 혀끝을 넘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포근히 스며들었다. 단순히 먹는 재미를 넘어서,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겉으로는 단단하고 까끌하지만, 안쪽엔 누구나 작고 보드라운 마음 하나쯤 품고 있다는 것. 해바라기 씨를 먹으면서,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날도 있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진짜 위로와 재미가 숨어 있다. 해바라기 씨는 작은 시간 속에서 나를 다독이고, 웃게 하고, 잠시 멈추게 만든다. 벗겨 먹는 그 단순한 동작 속에선 무언가를 놓아버리는 여유가 있었고, 그 작은 여유가 하루를 견디게 해 주었다.
나는 오늘도 볶음 해바라기 씨 봉지를 뜯는다. 아마도 내일도 그럴 것이다. 누군가는 이걸 ‘심심풀이’라 하겠지만, 내게는 ‘마음풀이’다. 벗겨낸 껍질만큼 가벼워지는 마음. 그렇게, 껍질 하나, 알맹이 하나, 마음 하나. 오늘 하루도 알알이 잘 익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