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을 떠도는, 닿지 못한 문장들
말이라는 건 참 묘하다. 한 마디는 가볍게 던질 수 있는데, 어떤 말은 목구멍 어귀에서 끝내 걸리고 만다.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 아니, 너무 하고 싶었기에 더 조심스럽고, 결국 꺼내지 못했던 말들. 그런 말들이 마음 어딘가를 둥글게 맴돈다. 하루를 보내도, 계절이 바뀌어도, 심지어 몇 해가 흘러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돈다. 말은 떠나지 않는 기억처럼 오래도록 내 안을 돌고 돈다.
사과의 말, 고백의 말, 이별의 말, 용서의 말. 입을 열면 울음이 터질까 봐,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서, 혹은 그저 타이밍을 놓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말을 맴돌게 만들고,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괜찮다’며 눙치고, ‘다음에 말하지 뭐’ 하고 넘기고, 시간이 지나면 덜 아프겠지 하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맴도는 말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불쑥 떠오르는 밤이 있고, 꿈결처럼 환하게 떠오른 얼굴이 있다. 그럴 때면 그 말들이 더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그때 그냥 말할걸.’ ‘한 번만 용기 냈더라면.’ ‘그 사람도 기다리고 있었을까.’ 후회는 그렇게, 말의 형태로 남는다.
어떤 말은 내뱉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지키기도 한다. 침묵이 가장 큰 배려일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침묵이 아름답고 현명한 것은 아니다. 어떤 침묵은 회피이고, 어떤 침묵은 이별이고, 어떤 침묵은 사랑을 죽이는 칼날이 된다. 결국 말하지 않은 말은 나를 갉아먹는다. 하지 못한 말이 그 사람에게 닿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조차도 이해받지 못한 채 남게 된다.
가끔은 그런 맴도는 말을 글로 적는다. 도착하지 못한 편지처럼, 보내지 못한 메시지처럼. 비어 있는 수신란에 이름을 넣지 않고 써 내려간 문장들. 그렇게라도 털어놓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한구석을 맴돌지만, 더 이상은 아프지 않다. 말이라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닿을 때 완성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고, 더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몇 개의 말을 마음속에서 굴린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그 말을 꺼낼 수 있을 날을 조용히 기다린다. 누군가의 귀에,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언젠가 맴도는 말이 아닌, 머물 수 있는 말로 살아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