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닿는 음악, 말 대신 머문 감정
추천곡: Jules Massenet – Méditation (from Thaïs)
그날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었지만, 친구는 연습이 길어졌다고 했다.
“그럼 학교로 올래?”
그 말에 나는 망설이다가 우산을 들고 조용히 캠퍼스로 향했다.
젖은 나무와 조용한 운동장,
그리고 음악실 근처에 다다랐을 때
문틈 사이로 피어난 선율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낯설고 느린 멜로디,
어딘가 슬프면서도 평온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것이 바이올린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 순간 내 마음속에도 조용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오래된 상실의 기억이,
어떤 말도 없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
그날은 정말 슬펐던 것 같다.
왜 그런지 명확하진 않았다.
내 기분이 이미 울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음악 자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 음악이 나를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
다만 무언가를 꺼내어 조용히 눈앞에 놓았고,
나는 그것을 외면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는 “연습 중이야”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그 음악실 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연주가 끝날 때까지,
그 슬픔의 결이 내 몸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
그 친구와는 멀어졌고,
그날 들었던 곡의 이름도 결국 잊혔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다시 들은 이 음악이
그 기억을 덜컥 열었다.
마스네의 Méditation.
처음 몇 마디가 흐르자
그날의 빗소리, 벚꽃 진 교정,
문틈 사이로 흐르던 그 선율이
모두 다시 피어났다.
신기했다.
이름도 몰랐던 곡이,
이름 없이도 나를 찾아왔다는 게.
그리고 그 기억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냥 아련했고, 조용히 반짝였다.
지금도 가끔,
그 곡을 들으면 말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떠나간 얼굴들, 지나간 계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코 허투루 남지 않았던 하루.
Méditation은 나에게 회상이고,
잠시 머물다 가는 감정의 숨결이다.
나는 오늘도 이 음악을 듣는다.
그 시절처럼 말없이.
다시 마주할 수 없는 그리움을
작게, 다정하게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