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눈이 오기 전, 음악이 먼저 왔다.

눈이 오기 전, 음악이 먼저 왔다.

by Helia

추천곡: Pyotr Ilyich Tchaikovsky – The Nutcracker, Op.71a: O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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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침을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흘려보내는 걸까.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그런데 무심코 재생한 클래식 재생목록에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서곡’이 흘러나오고,
나는 그만 멈춰 서고 말았다.

플루트와 현악기가 가볍게 포문을 여는 그 첫 음,
마치 아주 얇은 새벽 눈발이 창가에 내리듯,
조용하고 가벼운데 어딘가 마음을 간질이는 울림이었다.

처음 이 곡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장난감 가게 앞에서 들려오던 멜로디였다.
그날은 눈이 오기 전날이었고,
나는 모자 귀를 꼭 여민 채 작은 오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돌아가던 작은 무용수가,
마치 이 곡에 맞춰 춤추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그 장면은 유리알처럼 남아 있다.
아주 작은 설렘.
정확히 뭔지 설명할 수 없는,
그저 좋다는 감정의 가장 투명한 형태.
기대, 그 자체만으로 반짝이는 순간.

어쩌면 이 곡은 그런 감정들을 담아둔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쯤 스쳐간
희미하지만 순수했던 순간들을
그대로 봉인해 놓은 듯한 선율.

지금의 나는 더는 그런 기분을 쉽게 느끼지 않는다.
성인이 된다는 건
감정의 대부분을 무게로 느끼는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 곡을 들은 순간만큼은,
내 안 어딘가 아주 오래된 ‘기쁨의 기억’이
눈을 떴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마음만 잠시 이탈해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위에 커피가 식고, 창밖엔 아무 변화도 없는데
내 안에서는 눈이 오는 듯했고,
무언가 반짝이는 작은 세계가 열리는 기분.

그날 이후, 나는 아침마다 이 곡을 틀어놓는다.
계절이 바뀌고,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이 곡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해 준다.
누군가는 이 서곡을 ‘환상’이라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기적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동화이고, 환상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곡은
그 환상을 꿈꾸던 어린 나를
다시 불러오는 문장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음악 한 곡이 하루를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건 곡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기억의 마법 덕분이 아닐까.

나는 오늘, 다시 이 곡을 재생한다.
새하얀 마룻바닥 위에 무용수가 나와
가장 가벼운 발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상상을 하며.
눈이 오기 전,
음악이 먼저 도착한 아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