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I stayed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였다.

by Helia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나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꼈을 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때, 괜찮은 척하는 것도, 웃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전부 무너져 내리고 싶었던 순간.
그럴 때면 문득 '이제 그만두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왜였을까.
어쩌면 미련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버릴까 봐,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릴까 봐, 그것마저 무서워서라도 나는 떠나지 못했다.
때로는 사랑이었고, 때로는 책임이었고, 또 때로는 누구도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작은 자존심이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수없이 흔들렸다.
'지금 이만큼은, 내 마음 하나쯤은 알아줘도 되잖아.'
속으로 몇 번이고 외치며, 그래도 버텼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누군가는 쉽게 등을 돌렸고, 어떤 사람은 내 진심을 오해했고, 어떤 말들은 상처가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들에 맞서지 않았다.
부딪히는 대신, 웃는 얼굴로 넘겼고, 울고 싶을 땐 혼자서 울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세상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왜 가만히 있어?”
“그렇게까지 참을 필요 있어?”
“너만 손해 보잖아.”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모든 순간, ‘머물렀다’는 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강했기 때문이라는 걸.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에,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며 그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그 자리는 누구도 대신 서주지 않는 나만의 자리였고, 나는 그것을 비우고 싶지 않았다.
아니, 비워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모든 불안과 눈물과 고요한 저항의 시간들 끝에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Still, I stayed.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 있었다.
누가 몰라줘도, 누가 떠나도,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누군가를 위한 머뭇거림이기도 했고
스스로를 놓지 않기 위한 버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상처받은 기억 속에도 여전히 따뜻함이 있고,
외로웠던 날들 속에도 나를 지켜준 용기가 있었으니까.

나는 늘 부족했고, 서툴렀고, 어쩔 땐 너무 조용했다.
하지만 나만큼 나를 위로해 준 사람도, 지켜준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고맙다, 나에게.
그토록 많은 이유 속에서도 떠나지 않고,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서
살아남아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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