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인가, 이제.

그렇게 비는 예고 없이 내렸다, 너처럼

by Helia

아침부터 유난히 눅눅했다.
햇빛 한 점 없는 회색 하늘,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축축한 바람,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
이제 장마가 시작되는 걸까.
그러니까, 마음에도.

오전 내내 창밖을 바라보다가,
결국 조용히 커튼을 걷었다.
별다를 것 없는 골목 풍경,
그 위로 천천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세한 안개처럼,
그러다 곧 굵고 선명한 빗줄기로 바뀌었다.

어쩐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비 같았다.
그리고 문득, 너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스며들다가, 어느새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고,
그러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뒷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어야 했다.

장마는 비가 그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다.
하루 이틀쯤은 괜찮다 여겼던 축축함이
며칠이고 이어지면, 어느 순간 마음까지 눅눅해진다.
빨래는 마르지 않고, 공기는 무겁고,
작은 감정도 쉽게 곪는다.

마치, 너와 멀어지던 그 시기 같았다.
별일 없던 대화에 어색한 침묵이 끼어들고,
답장이 늦어지고, 말수가 줄어들고,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던 시기.
그땐 몰랐다.
우리 사이에도 장마가 시작됐다는 걸.

비는 계속 내린다.
장화가 없으면 운동화가 젖고,
우산이 작으면 어깨가 젖는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마치 괜찮다는 듯 길을 걷는다.
어딘가 다 젖어 있는데도,
아프다거나 불편하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건 마음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 마음도,
그때처럼 조금씩 젖어가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비가 와서,
그때 생각이 나서,
혹은 여전히 네 이름을 담은 알림이
한참을 울리지 않아서.

빗소리는 참 이상하다.
분명 시끄럽게 창문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조용해진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빗소리에 감정을 기대고 있는 느낌.

오늘은 유독 그런 하루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누구와 말 섞을 여유도 없는 날.
그저 조용히,
텅 빈 집 안에서 혼자 빗소리를 듣고 있는 날.

이제 장마가 시작되는 건가.
기상청 예보처럼 정확하진 않지만,
마음에도 장마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한 번 시작되면 오랫동안 젖어야 하는 시간.

그래도 예전처럼 억지로 웃진 않는다.
젖는 게 싫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비 오는 날은 젖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우산이 없다면 없는 대로,
감정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장마가 시작됐다.
이제야 조금,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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