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귀인을 믿지 않는 나에게

믿지 않지만, 믿고 싶었던 말

by Helia

사주를 맹신하지 않는다. 태어난 연월일시를 근거로 누군가의 성정과 재능, 운명을 단정 짓는 방식은,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해도 왠지 불편하고 미심쩍다. 그런데도 그 말을 곱씹게 된다. “글을 써야 하는 사주다.” “문창귀인이 있다.” 처음엔 웃고 넘겼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문창귀인. 글을 쓰는 재주를 가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귀한 별.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봤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하고, 말보다 글로 감정을 표현하길 즐기고, 머릿속에서 문장을 굴리며 잠드는 버릇까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칭찬을 받아서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혹시 정말로, 나는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일까. 믿지는 않지만, 믿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그래도 되는 걸까? 나는 스스로의 감각을 믿는다고 말해왔지만, 어떤 말은 내 안에 파문을 일으키며 오래 머문다. 마치 사주라는 형식을 빌려온 누군가의 예언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속삭인 운명처럼.

어쩌면 그것은 예언이 아니라, 인정이다. 그동안 살아오며 ‘왜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할까’, ‘왜 말로 하지 못할 걸 글로 적어야만 풀릴까’ 고민했던 모든 순간들에 대한 해명.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

믿는다는 건 결국,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것이다. 사주가 아니어도, 나는 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는 걸. 며칠간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면 마음이 막혀버리고,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 흐려지는 사람이라는 걸.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번역하는 일이다. 말로는 어설프게만 떠도는 감정을, 슬며시 글로 옮겨 적으면 그제야 내가 나를 조금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누군가 “글을 써야 하는 사주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해도, 나는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가, 어쩌면 내가 계속 쓰도록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사주를 맹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장이 나를 살렸다고는 믿는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에게 문창귀인은 별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말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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