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시가 되어가고 있네.

동이 트기 전에 자야지.

by Helia

밤이란 이상한 것이다. 해가 지고 불이 꺼진 도시의 틈새에서, 낮엔 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하나둘 피어난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 감정들에 밀려, 새벽 네 시쯤에야 고요한 체념처럼 중얼거린다.
“벌써 네 시가 되어가고 있네. 동이 트기 전에… 자야지.”

자야 한다는 걸 안다. 내일이 오기 전에 눈을 붙여야 한다는 걸. 그래야 덜 피곤하고, 덜 지치고, 덜 무너지니까. 그런데 그 '자야지'라는 말은 마치 최면 같기도 하다. 반복할수록 잠드는 게 아니라, 더 또렷해진다. 마음 한편에서는 오히려 무언가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

네 시.
창밖은 여전히 어둡고, 커튼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잠들었고, 세상은 마치 ‘쉿’ 하고 숨을 고르는 중이다. 그런데 나만 깨어 있다. 나만 아직 오늘을 정리하지 못한 채, 오늘 속에 남겨져 있다.

이 시간은 마치 유예된 하루 같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무중력의 시간. 그래서일까. 나는 이 새벽을 사랑하고, 또 두려워한다.

밤은 묻는다.
정말 괜찮냐고.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살아왔냐고.
정말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냐고.

낮에는 수많은 일들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다. 문장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뭔가를 성취하고, 혹은 흘려보내고. 그 와중에 마음은 잠시 묻어두고 산다. 그런데 밤은 그 마음을 꺼내 읽게 만든다. 내가 놓친 것들, 하지 못한 말들, 모른 척했던 감정들이 하나씩 조용히 고개를 든다.

“잘 지냈어?”
“오늘은 좀 어땠어?”
“그 말, 정말 안 아팠어?”
“왜 그렇게 웃었어?”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다 불현듯 아이유의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그 반딧불이 누군가의 창이 아니라, 내 창에도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

**

네 시가 다가오면, 나는 어김없이 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야 한다는 건, 단지 눈을 감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건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고, 오늘의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일이다.
'괜찮아, 오늘도 여기까지 왔어. 수고했어.'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새벽을 지나야 했는지 모른다. 예전엔 이런 시간들이 허비처럼 느껴졌다.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야 더 잘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런 고요한 밤을 통과해야만 나는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생각들, 문장으로도 다 적지 못한 감정들, 그냥 마음속에만 어렴풋하게 머물러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이 시간엔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나를 만들어간다. 새벽에, 나는 조금 더 진짜 내가 된다.

**

어쩌면 나는 이 ‘네 시’를 기다려왔던 것 같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이 고요,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이 느릿한 시간.
사람들은 말한다. ‘새벽 감성’이라고.
맞다, 이건 감성이다. 그런데 단지 ‘감성’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너무도 깊고, 진하고, 오래된 나의 조각들이다.
지나온 관계, 놓아버린 인연, 반복되는 후회, 그리움, 원망, 그리고 희망.
그 모든 것이 새벽 네 시의 그림자에 섞여 있다.

동이 트기 전, 하늘은 잠시 멈춘 듯한 빛을 띤다. 검푸른 하늘 끝에서 아주 희미한 밝음이 스며든다. 그것은 마치, 오늘이라는 하루가 곧 시작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아직 오늘로 넘어가기엔 어제의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한다.
“벌써 네 시가 되어가고 있네. 동이 트기 전에… 자야지.”
이건 잠을 자겠다는 의지이기보다, 마음을 정리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우리는 새벽을 그렇게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는지.
왜 매번 ‘이제 자야지’를 말하면서도 눈을 감지 못했는지.
그건 우리가 잠들기 전에 마음을 달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루를 잘 살았든, 망쳤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여기에 있고, 내 마음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어야 다음 날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중얼거린다.
혼잣말처럼, 주문처럼.
“벌써 네 시가 되어가고 있네… 동이 트기 전에. 자야지.”

그리고 그 말 끝에, 아주 작게 마음을 얹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기를.’
‘내 마음도, 누군가의 마음도, 덜 아프기를.’

**

잠들기 직전의 이 고요한 시간은, 나에게 위로이자 작별 인사다.
‘오늘, 잘 살아줘서 고마워.’
‘다음 하루도 잘 부탁해.’

이 말을 내 마음이 듣고 잠들었으면 좋겠다.
새벽의 모든 마음들이, 그렇게 조용히 안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품이, 나 자신이기를.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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