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그래도 엄마인데, 이해해 드려야지.”
근데 나는,
대체 왜 ‘나만’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지
그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일곱 살이 되어서야
엄마와 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무렵까지
나는 내가 아빠 없이 태어난 아이인 줄도 몰랐다.
아니, 아빠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다.
아이들은 보통 동화책에 나오는 ‘아빠’에 대해 상상이라도 한다지만
나는 그 단어조차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금기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나에게 “너 아빠는 뭐 하셔?” 하고 물으면
나는 얼버무렸다.
내가 아는 진실은 없었으니까.
엄마는 내게
아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떤 사정으로 엄마 곁에 살지 않았는지.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엄마를 이해해야만 하는 걸까.
엄마는 묻는다.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니?”
“이렇게 혼자 너 키우고, 이렇게까지 애썼는데.”
근데 미안하지만,
나는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냐면
엄마는 나를 키우지 않았다.
할머니가 키웠다.
엄마는 나를 맡겨놓고 떠났고,
어쩌다 오는 날이면
내 눈을 잘 마주치지도 않았다.
내가 울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내가 웃으면 “별것도 아닌 일에…”라고 말했다.
엄마는 감정이 무디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언제 엄마에게
‘사랑받는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엄마는 내게
“엄마가 너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 알아?”라고 말한다.
근데 나는 그게 가스라이팅처럼 들린다.
그건 엄마가 선택한 삶이었다.
누가 재혼하라고 등을 떠밀었나?
누가 나 몰래 새 삶을 꾸리라고 했나?
그건, 엄마의 선택이었다.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그 선택에 동참하지 않았다.
엄마의 인생에
나는 방관자였다.
심지어 통보조차 받지 못한.
나는 늘 일방적으로 들었다.
“넌 몰라서 그래.”
“엄마는 네 생각해서 그런 거야.”
“그때는 사정이 있어서…”
그 어떤 말에도
내 감정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서운하다고 말해도
“그건 너만의 생각이지”라는 말로 덮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또 말한다.
“그래도 부모님은 이해해야지.”
“자식은 부모한테 잘해야 복 받는 거야.”
그 말들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 자식인데,
왜 사랑을 되돌려줘야 해?
애초에, 받은 적도 없는데.
사랑이 없는 관계에서도
‘효도’는 의무인가?
애정이 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잘해야만 하는 게
그게 진짜 가족인가?
나는 이제야
그 질문을 입 밖에 꺼내본다.
엄마,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걸 감당하며 살았어.
엄마의 기분, 엄마의 상처, 엄마의 고집.
내가 이해해야 했던 건 늘 엄마의 몫이었어.
근데 엄마는
한 번이라도 나를 이해하려 했을까?
내가 얼마나 고단한 감정을 안고 자랐는지
지금도 모르겠지.
엄마는 늘 자신의 힘듦을 먼저 말해.
자신이 얼마나 억울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하지만 엄마,
그 모든 말들은 결국
엄마 스스로 만든 선택들이잖아.
그 선택의 결과를
왜 딸인 내가 감내해야 해?
나는 엄마를 동정하지 않아.
그렇다고 미워하고 싶은 것도 아냐.
그저 이제는,
더는 참지 않고 싶을 뿐이야.
엄마가 했던 선택에 대해
내가 미안해할 이유는 없고,
엄마가 만들지 않았던 애정에 대해
내가 잘해야 할 의무도 없어.
나는 그냥
이 말 한마디를 꼭 하고 싶어.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
엄마에게서.
엄마라는 사람에게서.”
그리고 그게
단 한 번도 주어진 적 없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내 감정을 보호할 거야.
그게 죄라면,
기꺼이 안고 살게.
하지만 이젠
나만 이해하는 관계는 끝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