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는 새벽
Couperin의 ‘Les Barricades Mystérieuses
새벽은 늘 내게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창밖에는 아직 어둠이 걸려 있고, 도시의 소음도 모두 숨을 죽인 채 이불을 덮은 듯 고요하다. 이 시간에 나는 주로 클래식을 듣는다. 말보다는 음이 더 섬세하게 감정을 건네는 시간, 글보다 멜로디가 나를 먼저 울리는 순간. 그런 새벽에 처음 만난 곡이 있다. François Couperin의 ‘Les Barricades Mystérieuses’.
직역하면 ‘신비한 바리케이드’. 그러나 이 곡은 장벽처럼 거칠지도, 신비를 과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무도 부드럽고 매끄러워서 그 안에 어떤 장벽이 숨겨져 있는지조차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음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다가설 듯 멀어지며, 감정을 다 담지 않은 듯 머뭇거리는 리듬으로 흐른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 더 완강한 침묵이었다. 나는 처음 이 곡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 곡은 말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음악 같다.'
왜냐하면, 나 역시 늘 말하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하고 싶은 말보다 삼킨 말이 더 많았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더 깊었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던 애틋함, 그리고 누군가가 알아채지 않기를 바라며 숨긴 상처들. 그런 내 마음에 이 곡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말 없는 장벽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바리케이드는 존재한다. 그건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의 간극, 오해의 두께, 혹은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투명한 벽이다. 그것들은 말로도, 손짓으로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높아지곤 한다. Couperin의 이 곡은 마치 그런 장벽 앞에서 말 대신 건네는 음 같았다. "나도 너처럼 말하지 못했어"라고, "이 침묵을 네가 알아줬으면 해"라고 말하는 듯한 음.
나는 어느 밤, 사랑했던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가 찢은 적이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편지를 다 쓰고 나서도 부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단 한 줄도 없었고, 그저 마음이 가득했던 것뿐이었으니까. 그는 그 편지를 읽지 못했지만, 나는 그 편지를 통해 내 안의 바리케이드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때 이 곡을 배경으로 깔아 두었다면, 아무 말 없이도 내 감정이 모두 흘러갔을 것만 같다.
이 곡은 마치 서로 등지고 앉은 두 사람이 뒷모습으로 교감하는 장면처럼 들린다. 눈을 마주하지 않고, 말을 건네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기척을 느끼고, 존재를 인정하는 것. 내가 이 곡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강요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점. 이 곡은 결국 '말을 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곡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을 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게 된다. 그럴 때 이 곡을 틀면 된다. 'Les Barricades Mystérieuses'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어떤 위로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한다.
나는 이 곡을 새벽마다 듣는다. 흐릿한 밤과 새벽의 경계에서, 이 음악은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정리해 주는 힘을 갖는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 못하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준다. 그렇게 나는 이 곡을 통해 내 마음의 바리케이드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나,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그게 오늘의 나다. 그리고, 음악이 주는 가장 큰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