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감정들과 잉크가 마른 펜의 쓸모에 대하여
이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야. 비 오는 날 운동장에서 조약돌을 모아 물웅덩이 위에 나란히 놓고 놀던 나에게,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열 살의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예쁜 돌을 모았을 뿐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았다. 꼭 내 존재 전체를 부정당한 것처럼.
그 후로 ‘쓸모’라는 말에 민감해졌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일까? 지금 하는 일은 쓸모 있는 시간일까? 이 감정, 이 관계, 이 글, 이 생각은? 쓸모 있는가?
우리는 쓸모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신봉하며 산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로 알아야 한다는 사회 속에서, 침묵하는 것도 기술이라 배운다. 쓸모없는 말은 삼키고, 쓸모 있는 말만 꺼내도록 훈련받는다.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사람은 밀려나고, 쓸모 있는 사람은 박수받는다. 그런데 그 ‘쓸모’는 누가, 무엇으로 정한 것일까. 언젠가 인사동 골목의 한 도자기 공방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구석 선반 위에 금이 간 찻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파손된 부분을 금으로 채워 복원한, 일명 ‘킨츠기’ 도자기. 찻잔은 더 이상 물을 담을 수 없지만, 누구보다 찬란한 균열을 품고 있었다. 공방 주인은 말없이 그 잔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팔 수 없어요. 대신,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죠.”
찻잔이 걸어온 시간과 무늬, 깨진 뒤에야 생긴 아름다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는 단지 기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존재는 그 자체로 말없이 세월을 견디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 그 잔은 더는 물을 담을 수 없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 잔이라면 내게도 하나쯤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잘 고장 나는 사람이다. 감정에 휘둘리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사람들과도 쉽게 어긋난다. 때로는 그런 나 자신이 너무도 쓸모없게 느껴졌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와 효율, 정해진 대본에 맞추지 못하면 무능력으로 낙인찍히는 날들이 있다. SNS 속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고, 돈도 잘 벌고, 멋지게 나이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멈춰있는 것 같을까. 그런 날이면 조약돌을 나열하던 아이가 떠오른다. 비에 젖은 운동장 위,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돌 하나하나를 옮기던 아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 해도, 그 아이는 분명 행복했다. 그때의 나는 의미를 몰랐지만, 돌 하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던 그 감각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그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내 기억이자 내 서사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쓸모없던 일이었을까? 때로는 감정도 쓸모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며
“이 감정 낭비하지 마, 빨리 잊어”
라고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고통, 외로움, 쓸쓸함, 후회, 미련 같은 감정들. 그 모든 ‘쓸모없어 보이는 마음’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고, 더 낮은 자세로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감정들이야말로 결국 나라는 사람을 다듬은 조각들이었다. 슬픔도, 외로움도, 방황도, 다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한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책방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엔 마을 어르신들이 쓴 자서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갈하지 않은 문장들, 맞춤법이 어긋난 문장들이 가득했지만, 그 안엔 눈물이 났다. 촘촘히 살아낸 사람의 흔적은 문장의 완성도를 뛰어넘는다. 삶이 묻어난 글에는 말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세상이 ‘쓸모없다’고 여겼던 노인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겐 살아갈 용기가 되었다. 그렇게 어떤 존재의 쓸모는,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이 세상엔 쓸모없는 것이 없다. 너무 아파서 울었던 그날,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순간, 실패로 끝난 그 선택, 돌이킬 수 없었던 대화, 부끄럽고 초라했던 그날의 나까지도. 전부 다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이었다. 어떤 쓸모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고, 어떤 쓸모는 오직 나만이 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 의미 없는 일도, 내겐 그 자체로 존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오래된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아도 그늘이 되고, 부러진 연필은 짧은 메모 한 줄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고, 잉크가 마른 펜은 다 써냈다는 증거가 된다. 아무것도 쓸모없는 순간은 없다. 그 말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나도, 당신도, 충분히 소중하고 쓸모 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건 어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쓸모’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빨리 단정 짓지 말자. 때때로 인생은 돌아서 흐르고, 어떤 의미는 나중에서야 보인다. 별일 없는 오늘, 문득 생각나는 조약돌 하나. 그 돌 위에 앉은 마음 하나.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조금 더 반짝이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