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파랑을 기대하며
오늘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눈을 들면 바로 그곳에 닿을 것처럼 가까웠고,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 얹힐 듯 투명했다.
그저 하늘일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멈춰버렸다.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런데도 나는 어딘가 자꾸만 가라앉았다.
오늘의 파랑은 그런 색이었다.
맑고 투명한데,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아무 일도 없는데, 문득 울고 싶은 마음이 드는.
파랑은 원래 그런 색이니까.
멍든 마음에도, 잊고 싶었던 기억에도
가장 먼저 스며드는 건, 언제나 파랑이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하늘만 보았다.
걷다가도, 서다가도, 창가에 앉아 있다가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잠시 숨을 고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파랑을 가지고 산다.
말하지 못했던 말들, 보내지 못한 마음들,
끝내 꺼내지 못한 진심들이 파랑이 된다.
그 파랑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고여 있다가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순식간에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적신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괜히 하늘이 너무 예뻐서,
괜히 마음이 더 아려서,
괜히 예전 생각이 나서,
괜히 눈물이 고일 뻔한 날.
하늘은 아무 말이 없다.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말 없는 위로, 고요한 다정.
그런 것들은 언제나 파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뒷모습,
전화를 끊고도 미처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까.
사람은 늘 지나간 사람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산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어느 날 하늘을 보면 또 생각난다.
마치 구름 사이로 불쑥 나타나는 기억처럼.
하늘은 늘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말들, 울음, 고백, 후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마음까지.
오늘의 파랑은, 그런 기억들을 꺼내왔다.
이별의 날,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하늘도
그때의 침묵도,
모두 다시 내 눈앞에 있었다.
하늘이 파랗다는 건,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슬픔도, 후회도, 그리움도,
결국은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남은 것들이니까.
마음이 투명해질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정돈되고,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파랑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 데도 보내지 않고.
그냥 조용히, 내 마음속 하늘 한편에.
사실 우리는 모두, 하늘 아래에서만 울 수 있다.
지붕 없는 곳에 나와야 비로소 울 수 있다.
세상과 내가 단둘이 되는 곳,
말이 닿지 않는 공간.
파랑은 그런 색이다.
밖은 맑고 깨끗하지만,
안쪽은 눅눅하고 흔들리는 감정.
오늘 나는 그런 파랑을 안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은 알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아채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기울고,
하늘은 점점 어두운 파랑으로 물들었다.
낮의 투명한 파랑은 사라지고,
깊고 짙은 파랑이 세상을 덮었다.
어쩌면,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정직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억누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감정의 색이 드러나도 괜찮은 시간.
오늘의 파랑은, 그렇게 어둡고 단단한 얼굴로 내 곁에 남았다.
잠시 동안, 나도 그 파랑이 되어 조용히 숨을 고른다.
다시 어두운 밤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의 파랑은 이렇게 말한다.
“너, 참 잘 버텼어.”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말 하나는 항상 건넨다.
울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그저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맑고 슬픈 하늘 아래서
조용히, 내 하루를 마무리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조용히 흔들렸던 내게
파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살아보려 한다.
내일의 하늘도 분명,
다른 색의 파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