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든 삶, 멀어진 세상
나는 버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버스를 탈 때마다 몸이 긴장하고,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떠오르는 통증.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만삭이었던 어느 날,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배는 너무 커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몸은 자주 휘청거렸다.
그날따라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구석진 자리에 간신히 앉아 있었다.
버스는 평소처럼 달렸고, 나는 평소처럼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강하게 밟혔다.
누군가 앞에 튀어나왔는지, 아니면 앞차가 급정거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내 몸이 그대로 앞으로 쏠렸고,
순간적으로 꼬리뼈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는 것뿐이었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누가 도와줄 틈도, 내가 소리 낼 틈도 없었다.
그저 몇 초, 몇 초 사이였는데,
그 기억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안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 뒤로, 버스는 단지 ‘이동수단’이 아니게 되었다.
그건 공포였고, 트라우마였고, 어떤 날의 증거였다.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를 보면 나는 무심코 뒤돌게 되었고,
그 흔한 교통카드 태그 소리에도 가끔은 어깨가 움찔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버스는 편리하고 저렴하며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내게 버스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날의 기억을 끌고 다니는 상자일 뿐이다.
그 안에 갇히는 순간, 나는 과거로 회귀한다.
아직 뱃속에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눈을 꾹 감았던 그때로.
사람들은 모른다.
꼬리뼈 하나가 얼마나 깊은 통증을 남기는지.
그건 단지 육체적인 상처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누군가의 실수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무력함을 배웠고,
몸이 무거울수록 세상은 더 차갑다는 걸 배웠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
누워 자다가도 뒤척일 수 없는 불편함.
사람들은 산후 통증이라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단순한 출산의 흔적이 아니라, 버스 안 그 순간의 흔적이라는 걸.
한동안 나는 밖에 나가는 걸 꺼렸다.
멀리 가야 하는 약속은 모두 취소했다.
택시를 타고도 불안했고, 지하철에서도 문 앞에 서는 게 두려웠다.
그런 내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후 나는 모든 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버스가 아닌, 내 발로.
정류장 앞을 지날 때마다, 그날의 나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괜찮아. 이제는 너를 내가 지켜줄게."
버스를 타지 않는 내 삶은
그날의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자,
내 몸에 남은 시간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지금은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고,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중이다.
꼬리뼈는 아직도 간헐적으로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고통이 나를 연약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그 기억이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여전히 버스를 타지 않는다.
누군가는 ‘별일 아닌데 너무 예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이건 나만이 아는 상처이고,
내 방식대로 치유해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사람마다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그저, 버스를 타지 않음으로써
내 안의 그날을 조용히 껴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