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때로, 아무 말 없이 피어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마주하면
말이 없어도, 손을 잡지 않아도,
심지어 함께 있지 않아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
사람들은 보통 사랑을 하면 다가가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며,
상대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다가가지 못했다.
다가갈 수 없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차고,
이미 너무 좋아서.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나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어느 하루 속,
버스정류장에서, 도서관 책장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장면이 스크린 속 장면처럼 반짝거렸다.
햇빛 아래 그의 옆얼굴,
고개를 숙이고 책장을 넘기는 손,
웃는 듯, 아닌 듯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표정.
그 장면들이
하나도 대단한 것이 아님에도,
나는 그 순간들을 마음 깊이 새기며
매일을 살아냈다.
누군가를 바라만 본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필요로 한다.
먼저,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
내가 갖지 않아도 괜찮고,
내 곁에 없더라도 좋으며,
그 사람이 나를 몰라도
그저 행복하게 있어주면 된다는
조용하고 깊은 마음.
이런 마음은
아무에게나 들지 않는다.
그래서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건
어쩌면 아주 큰 축복이다.
비록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움이니까.
나는 그 사람과 별다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기도 했지만,
그 정도였다.
그저 멀찍이서
그의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나 불렀고,
그의 하루가 평안하길 바랐고,
그의 웃음이 늘어나는 날이면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게 다였다.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감정이
결코 작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은 흔히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을 말로 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그 말에 담지 못할 감정이 존재한다.
오히려 말로 옮기는 순간
깨어져버릴 것 같은
섬세하고 투명한 감정.
나는 내 마음을
쉽게 꺼내지 않았다.
그 사람을 향한 내 감정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풍경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랑이 있다 믿는다.
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오래 기억되는 사람.
서로의 번호를 모른 채
마음속 깊이 자리 잡는 사람.
그런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나는 가끔 문득문득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무심코 들은 노래 한 곡,
어느 책 속의 한 문장,
비 오는 오후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면
내 마음 어딘가가
부드럽게 젖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꼭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주는 감정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내가 품은 마음이
나를 더 깊게 했다.
그 사람과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내가 그를 마음속에 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인생은
조금 더 빛날 수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았던 사람.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
내 마음의 결을,
삶의 결을
조금은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누군가를 바라만 본다는 건
애틋함의 절정이자
가장 순수한 감정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주
확신을 원하고,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나에게 향하는지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랑은
때로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에서 머물고,
내 삶의 어느 계절을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조용히 완성된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럼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거잖아?”
“사귄 것도 아니고, 헤어진 것도 아니고, 뭐가 남았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모두 ‘사랑’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었고,
다가가지 않아도 충분했던 시간.
그래서 이 감정에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사무치는 그리움은 있지만,
부끄러움은 없다.
그 사람을 사랑한 내가
조금은 더 따뜻한 내가 되었으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사람은 어딘가에서
자신이 이런 감정의 대상이었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 사람이 몰라도 되는 사랑이 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내 안의 기억으로
그 사람을 간직하고,
그 사랑을 천천히 놓아주고,
이제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살아간다.
바라만 보아도 좋았던 너,
그 시절의 나에게 고마워.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마음들에게,
그 사랑은 진짜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