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사랑은 매번 오해에서 시작된다.

오페라 한 편이 말해준, 관계의 아이러니

by Helia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 피날레」(Saint-Saëns, Carnival of the Animals - Finale)


사랑이라는 건, 참 이상한 일이야. 처음에는 그저 눈이 맞아 시작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전부 오해에서 시작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오해를 무릅쓰고 나아가다가, 진짜 감정과 부딪히며 엉망이 되거나, 또 한 발 가까워지거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그런 사랑의 아이러니를 유쾌하고도 냉소적으로 그려낸 오페라다. 처음 이 오페라를 접했을 땐, 복잡한 인물들의 관계에 정신이 없었다. 하녀와 하인, 귀족과 백작부인, 사생아와 시녀, 누구 하나 단순한 인물이 없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숨기며, 저마다의 욕망을 지닌 채 무대 위를 종횡무진한다. 그런데 그 얽히고설킨 감정선이 어느 순간,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마치 내 주위, 혹은 내 안에도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피가로의 결혼』의 핵심은 ‘계급’도 ‘시대 풍자’도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오해, 감정의 충돌, 그리고 그 속에서 끝내 웃어버리는 유쾌한 체념이 더 인상 깊었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그 앞에는 백작의 음흉한 계략이 있다. 자신의 하녀 수잔나를 손에 넣기 위해, 백작은 고전적인 '초야권'을 행사하려 한다. 이 시대엔 어처구니없는 일처럼 들리겠지만, 그 권력의 구조와 은근한 강압은 오늘날의 권력형 연애, 위계 속 감정 착취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잔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녀는 오히려 백작의 속셈을 간파하고, 백작부인과 손잡아 그를 골탕 먹일 계획을 세운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건 사실 피가로다. 그는 사랑을 믿지만, 동시에 사랑을 의심한다. 수잔나를 믿고 싶지만, 백작이라는 존재 앞에서 끊임없이 불안을 느낀다.

그 모습이 꼭 우리 같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싶으면서도, 작은 오해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고, 단지 침묵이 길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왜곡된다.
피가로의 우스꽝스러운 질투는 결코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건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연인의 카톡 답장이 늦어졌다고 불안해하는 감정과도 닮아 있다.

『피가로의 결혼』은 단순한 희극이 아니다.
그 안엔 사랑과 욕망, 의심과 관용, 오해와 오해의 해소,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 있다.
다만 모차르트는 그것을 너무도 우아하고 익살맞게, 장난처럼 풀어냈을 뿐이다.

가끔 사랑은, 너무 진지하게 시작하면 무거워진다.
차라리 이렇게 가볍게, 때로는 웃으며 “그래, 나도 너처럼 바보 같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더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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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백작이 자신의 부인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오페라의 모든 소동이 멈춘다.
관객은 침묵 속에 숨을 고르고, 백작의 ‘실수’는 그의 ‘인간성’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백작부인은, 차분한 음성으로 그를 용서한다.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감정인지, 얼마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 그 장면 하나로 절절하게 느껴진다.

피가로도, 수잔나도, 백작도, 백작부인도 사실 모두 엉망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정을 숨기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결점을 보듬으며 다시 손을 맞잡는다.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
그게 관계다.
그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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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매번 오해에서 시작된다.
첫인상이라는 오해, 침묵이라는 오해, 웃음이라는 오해, 늦은 답장의 오해, 그리고 때로는 진심조차 오해로 전달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계를 지속하는 건, 그 오해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때때로 기적처럼 실현된다.
마치 모차르트의 오페라처럼,
수많은 갈등 끝에 결국 노래하고 웃게 되는 순간처럼.

사랑은 진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하지만 진심 없이는 사랑조차 시작되지 않는다.
『피가로의 결혼』은 그 모든 모순을 안고도, 경쾌하게 우리에게 말해준다.

“인생은 희극이고, 사랑은 변주야.
그러니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고,
결국엔 용서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