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헨델의 아리아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
울고 싶었다.
울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그날 밤, 숨이 막히던 감정의 응어리가 한 방울의 눈물로 흘러나왔더라면,
나는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울지 못했다.
울고 싶어서, 가슴이 저릴 만큼 애가 타는데도
눈물은 끝끝내 흘러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릴 땐 그렇게도 잘 울었으면서.
버려진 장난감 때문에도 울고,
엄마가 늦게 돌아오면 혼자 남겨졌다는 서러움에 울고,
만화 주인공이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울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눈물이 ‘약함’이 되어버린 순간.
감정을 숨기고,
울음을 참는 일이
‘어른스러움’이 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울면 지는 거야.”
어릴 적부터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강해져야 한다고, 눈물은 부끄러운 거라고.
그렇기에 슬퍼도, 아파도,
우리는 눈물대신 웃음을 입에 걸었다.
하지만 웃고 있어도,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진짜 괜찮아지는 대신,
‘괜찮은 척하는 법’만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은 음악 한 곡이 있었다.
헨델의 아리아, “Lascia ch’io pianga”
한국어로 번역하면 ‘울게 하소서’
처음 그 곡을 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의 감정을 꺼내어
“괜찮아. 울어도 돼.” 하고 말해주는 듯했다.
음악은 슬프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아팠다.
‘울게 하소서, 나의 슬픔을
자유를 갈망하는 이 고통을…’
이 간절한 기도 앞에서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울지 못해서 더 아픈 것이다.
울면 약해진다고 배웠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안의 눈물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울 줄 몰라서,
운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스스로를 더 아프게 만든다.
어른이 되어 겪는 슬픔은
어릴 때와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이름 붙이기도 어렵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
말하지 못한 상처,
내 안의 결핍,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허무함.
이런 감정들은
말로도, 글로도 완전히 풀어낼 수 없다.
오직 ‘눈물’만이 해낼 수 있는 위로가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는 참는다.
참고, 견디고, 덮는다.
그리고 어느 날,
스스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벽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더더욱,
울게 하소서.
울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다.
눈물은 고장 난 감정을 다시 흐르게 하는 통로다.
흐르지 않는 감정은 고여서 썩는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터질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대신,
흘려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덜 아플 수 있다.
나는 이제 가끔 혼자 울기로 한다.
어쩌면 눈물은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흘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방, 조용한 음악,
그리고 나만 아는 사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눈물은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
살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슬플까?’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아주 오래된 눈물이
그제야 비로소 흘러나오려는 걸지도 모른다.
어릴 적 울지 못했던 순간들,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어서 참았던 서러움,
모른 척 넘겨버렸던 자존심.
그런 감정들이
어느 날 음악 한 곡, 혹은 한 장면,
어떤 문장 하나에
툭, 하고 터진다.
그건 약함이 아니라,
우리 안의 오래된 힘이다.
‘울게 하소서’라는 말은
사실 ‘살게 하소서’라는 말과 닿아 있다.
울 수 있어야
버틸 수 있고,
버텨야
살 수 있다.
우리는 울 수 없어서 고장 난 존재다.
아픈 것도, 슬픈 것도 허락받지 못해서
점점 무뎌지고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대신,
지금, 울자.
지금, 흘리자.
누군가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감정이 풍부하냐”라고.
그 말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나는 아직,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감정이란 건
우리를 흔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살리는 힘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당신 안의 오래된 감정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울게 하소서.”
참지 않아도 돼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당신의 눈물은
당신을 살릴 거예요.
그렇게 흘려보낸 감정의 끝에서
비로소
당신은
당신에게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