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낮 세 시의 리듬

드뷔시, 그리고 오후의 춤

by Helia

낮 세 시는 생각보다 조용한 시간이다. 점심시간의 북적임은 사라지고, 거리의 분주한 걸음도 일시적으로 멈춘다. 카페의 커피 머신 소리도 잠시 멈추고, 찻잔 위에는 증기가 흐느적거리며 피어오른다. 빛은 서서히 기울고 있고, 창가에 앉은 나는 문득 들려오는 음악에 고개를 든다. 드뷔시의 현악 4중주 2악장, ‘꽤 빠르고 리듬감 있게’. 음악은 예고 없이 들어왔지만, 나는 이 곡이 지금 이 순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곡은 흔히 말하는 ‘현악 4중주’의 틀을 비껴간다. 교과서적인 고전주의적 구성이 아니라, 마치 춤을 추듯 흐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프랑스적인 세련된 정서를 품고 있다. 리듬은 명확하지만 억지로 박자를 밀어붙이지 않고, 선율은 뚜렷하지만 고정된 멜로디를 강요하지 않는다. 음악은 그냥 그곳에 존재하고, 듣는 나는 그것을 따라가며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게’ 된다. 마치 잠깐 졸고 있다가 꿈속에서 슬쩍 빠져나오는 느낌처럼.

드뷔시는 이 곡을 1893년에 썼다. 음악사에서 ‘인상주의’라는 단어가 부상하던 그 시기, 그는 새로운 감각과 질감을 실험 중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던 그의 화성과 구조는 이 곡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그의 음악이 단순히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을 바꾸고, 시간을 흘러가게 만드는 무형의 리듬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2악장. 꽤 빠르다고는 하지만, 이 리듬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던지는 울림은 흥분을 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내 안의 정서를 하나하나 꺼내게 만든다. 들뜨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음악은, 마치 부드러운 장면 전환처럼 나의 기억 속 어떤 날의 오후를 떠오르게 했다. 그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고등학생 때, 비 오는 날 학교 자습실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친구의 이어폰을 빌려 처음 들었던 클래식이 바로 이 곡이었다. 무슨 음악인지도 모른 채 재생버튼을 눌렀고, 나는 책을 덮은 채 멍하니 리듬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 이 오후 세 시의 공간에서 다시 부유하기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가 음악을 통해 슬쩍 맞닿는 순간이었다.

음악은 종종 우리에게 시간을 초월하는 감각을 준다. 드뷔시의 이 곡처럼 말이다. 그의 음악은 내게 ‘사유’보다는 ‘감각’을 먼저 선물했다. 생각보다 앞서 나가는 음표,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율,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조용한 질문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떤 시간 속에 있나요?’라고.

음악은 이따금 우리의 일상에 ‘작은 틈’을 만든다. 드뷔시의 2악장이 그렇다. 단조로운 루틴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반쯤 무의식적인 순간을 유도하고, 그 짧은 틈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느끼게’ 된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 곡을 듣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살아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발끝이 리듬을 따라가고, 머릿속은 한 발짝 늦게 감정을 따라가며, 그저 지금이라는 시간에 머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 음악을 듣고 있겠지. 어떤 이는 낮잠에서 막 깨어나고 있을 수도, 누군가는 교정을 걷다가 이 곡을 플레이리스트에서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리듬을 흘려보내진 않을 것이다. 이 곡은 조용히 울리면서도, 단단한 손으로 청자의 어깨를 건드리는 것 같은 힘이 있다. 강요하지 않지만, 결코 무시당하지도 않는다.

오후 세 시라는 시간은 신기하게도 감정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약간의 졸림과 집중력 저하, 햇살의 변화, 그 틈에 스며드는 클래식. 드뷔시는 바로 이 틈을 포착하는 데 뛰어났고, 이 곡은 그 모든 가능성을 품은 채 흐른다. 그것은 한 편의 시처럼, 아니면 누군가의 어릴 적 꿈처럼.

나는 이 곡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때, 어떤 설명도 붙이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오후 세 시에 들어봐.” 그러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말한다. “묘하게 좋더라. 별 건 없는데 빠져든다.” 이 말이야말로 드뷔시의 힘, 이 곡의 본질을 정확히 말해주는 표현이 아닐까.

오늘도 오후 세 시가 되면, 나는 잠시 멈춰 이 음악을 틀어본다. 리듬은 다시 시작되고, 내 하루도 그에 맞춰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춤추듯이, 그러나 나만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