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
틈만 나면 휴대폰을 든다.
틈만 나면 먼 산을 본다.
틈만 나면 입술을 깨문다.
틈만 나면 나를 의심한다.
틈만 나면 사랑하고, 틈만 나면 도망친다.
그렇다. 우리는 틈이라는 시간을 통해 숨을 쉬고, 무너지고, 살아간다.
어느 날이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은 후, 나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딱히 볼 것도 없었다. 읽지도 않을 뉴스 앱, 이미 한 바퀴 돌았던 SNS 피드, 그리고 대답할 말이 딱히 없는 메시지 하나. 그런데도 손은 바쁘게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날 처음으로 그 생각을 명확히 인식했다.
틈이 무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말이 멈추는 순간, 시선이 허공을 가르는 틈. 그 어중간한 공백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했던 것이다. 누군가 기다리는 동안, 버스를 타고 가는 10분 동안, 회의 시작 전 3분 동안. 나는 매번 무언가로 그 틈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의식은 혼자 아우성쳤다.
틈은 한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틈이기도 하다.
친구가 약속에 늦는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카페 창밖을 보며 사색에 잠기고, 누군가는 불안한 듯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반복적으로 시계를 본다.
누군가는 책을 꺼내 읽고, 누군가는 핸드폰 카메라를 열고 눈썹 정리를 한다.
누군가는 손톱을 깨물고, 누군가는 다리를 떨고, 누군가는 조용히 울기도 한다.
사람은 어쩌면 틈 속에서야 ‘본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틈만 나면 울고 싶다’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괴롭힌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아주 작고 얇은 틈만 나면 눈물이 핑 돌았다.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식탁에 앉아 라면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니면 편의점에서 계산하고 나오며 비닐봉지 손잡이를 쥐는 그 몇 초 사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짧은 틈에서 눈물이 올라왔다.
그건 피로였고, 외로움이었고, 복잡한 마음의 뒤엉킴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감정들이 틈을 타 올라오는 것이다.
한창 우울이 짙던 시기, 나는 ‘틈만 나면 자책하는’ 사람이었다.
SNS에 친구가 올린 여행 사진을 보고, 누군가의 커리어 소식을 듣고, 어쩌다 타인의 연애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를 비하했다. ‘나는 왜 여기에 멈춰 있을까.’ ‘나는 왜 아직도 제자리일까.’
그런 생각들이, 무방비한 틈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시절의 나는, 바쁘지 않으면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일정표에 빈칸이 생기면 안 되고, 주말에도 할 일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일에 밀어 넣고 채찍질하며 틈 없이 살려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달려간 끝에, 결국 무너졌다는 걸 알게 됐다.
틈을 없애려 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진다.
틈 없이 사는 사람은 ‘틈’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이 회복되는 것도, 내면이 숨 쉬는 것도 결국 ‘틈’이라는 여백 안에서 이루어진다.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틈을 만든다.
일부러 휴대폰을 멀리 두고, 카페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본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다.
그 틈 사이로 내 마음이 조용히 올라온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고,
어느 날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얼굴이 떠오르고,
어느 날은 울컥하게 반가운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때 알았다.
내가 그토록 피하려 했던 ‘틈’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문틈’이었다는 걸.
틈만 나면 불안을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무언가를 하던 나는,
이제는 틈만 나면 내 안을 들여다본다.
가만히 누워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잠시 커피잔을 내려놓고 입을 다 물어본다.
틈만 나면 과거를 후회하던 나는, 이제 틈만 나면 ‘지금’을 느껴보려 한다.
마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틈만 나면 쉬고 싶어."
"틈만 나면 도망치고 싶어."
"틈만 나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그 모든 문장 속에는 공통된 갈망이 있다.
‘잠깐이라도 숨 쉴 수 있는 여백을 허락해 달라’는 간절함.
삶은 너무 빠르고, 숨 가쁘다.
그래서 더더욱 ‘틈’을 허락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나만을 위한 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틈만 나면 나를 안아주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나 자신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