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만 찾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해도 괜찮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울 뻔했다.
허락은 항상 누군가의 몫이었으니까.
나는 내 삶의 주인이면서도 허락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래서 누군가가, 조용히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을 때—
“무엇이든 해도 괜찮아.”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선언처럼 들렸다.
비로소 나를 시작해도 된다는 선언.
돌이켜보면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꼭 머뭇거렸다.
이게 맞는 일일까,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진 않을까, 괜히 욕먹진 않을까.
생각이 앞서고 망설임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계절이 몇 번이고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무엇이든 해보는 게 낫다.
틀려도 좋고, 실패해도 괜찮다.
비웃음을 사도, 누군가의 기준에 못 미쳐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때 나는 그림을 그렸다.
다들 아는 그런 멋진 그림은 아니었다.
볼펜으로 긁적이는 낙서였고, 여백을 메우는 패턴이었고, 종종 사람 얼굴이었다.
내가 그린 건 예술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무엇이든’ 그려도 된다는 감각을 처음 배운 건 그 시기였다.
처음엔 형체 없는 점과 선으로 시작했지만, 그 안엔 나의 하루가 담겼고,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쌓아두었는지를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나를 알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현실 속에서 쉽게 눌리고, 접히고, 꺾인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틀, 돈의 한계, 시간의 벽…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안의 ‘무엇이든’을 조용히 질식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점점 ‘정답만 찾는 사람’이 된다.
모범적인 경로, 안정적인 일, 실수하지 않는 선택.
하지만 그 길 끝에서 남는 건,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은 공허함이다.
나는 그 공허함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조금씩 틀을 벗기 시작했다.
대단한 게 아니라, 작은 것부터였다.
낯선 카페에 들어가 보고, 혼자 여행을 떠나보고,
하고 싶었지만 미뤄둔 일들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렇게 ‘무엇이든 해보는’ 하루하루가 쌓이며
나는 점점 살아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고,
그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면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해야 할 일’만 가득하던 일정표 사이에도
‘하고 싶은 일’이라는 조그만 틈이 생긴다.
누군가의 평가에 휘둘리던 나날 사이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중심이 생긴다.
무엇이든 해도 괜찮은 삶, 그건 결국 내가 내게 허락을 내리는 삶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이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자유로운 단어가 아닐까.
무엇이든 먹고, 무엇이든 말하고, 무엇이든 느끼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 넉넉하고 다정한 가능성의 말.
어릴 적 우리는 분명 그렇게 살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시간은 많고, 실수는 용서되었으며,
꿈은 누군가의 평가가 아닌 내 상상력의 크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그 ‘무엇이든’을 하나씩 반납했다.
현실과 타협하며, 겁을 배우며, 꿈을 숨기며.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다시 그 가능성을 되찾을 수 있다.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
삶이 정답이 아닌 실험의 연속이라는 걸.
그래서 이제 나는 말하려 한다.
“무엇이든 해도 돼.”
스스로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사소해 보여도 좋다.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면, 해보자.
글을 써보고 싶다면, 써보자.
마카롱을 굽고, 춤을 추고,
길고양이를 찍고, 이름도 없는 마을에 가보자.
‘잘할 수 있을까?’보다는 ‘해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먼저일 때
우리는 진짜로 살아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해보는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을 직접 조각해 나가는 사람이다.
틀릴지도 모르는 색을 칠하며, 망칠지도 모르는 구성을 만들며,
남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무엇이든 해보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나에게
‘무엇이든’ 허락해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