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모든 게 귀찮아진다.

쉬고 싶다는 당신의 마음이, 조금 덜 아프기를.

by Helia

가끔은 모든 게 귀찮아진다.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도,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심지어 좋아하던 일조차.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날이 있다. 이유를 떠올려보려 하지만 곧 포기한다. 그조차 귀찮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은 늘 똑같다.
눈을 뜨면 밀려오는 ‘해야만 하는 일들’의 목록. 끝도 없다.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 그것들. 알람은 이미 세 번쯤 꺼버렸다. ‘지금 일어나면 아직 오전이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기 합리화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또 하루가 흘러가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애써왔다.
성실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문제없는 사람. 그렇게 보이기 위해 말이다. 어떤 틀에 끼워 맞춰진 인간이 되어야만 괜찮은 삶이라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쉼 없이 달려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다. 마치 엔진이 과열된 차처럼, ‘달리는 것’엔 익숙하지만 ‘쉬는 것’엔 낯선 우리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가 아마도 이것이다.
모든 게 귀찮아지는 것. 말도, 사람도, 해야 할 일도. 그리고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내면에서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그만큼 내 마음이 지쳤고,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나라는 시스템 전체가 과부하 상태에 있다는 알림.

문제는, 그 신호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데 우리가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피곤해도 버텨야 하고, 힘들어도 웃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요즘 좀 피곤해”라는 말조차 경쟁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증명’처럼 소비된다. 그런 세상에서 “모든 게 귀찮다”는 말은 나약한 사람의 넋두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찮다’는 감정을 마주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상태를 감지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무시하거나 눌러버리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용기. 그건 아주 성숙한 태도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괜찮아질 수 있으니까.

그런 날이 있었다.
무기력함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했지만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커피잔만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창밖을 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조용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그 모습. 나는 그걸 보고 문득 생각했다.
아, 지금 내가 멈춰 있는 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이제 그만, 쉬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구나.

그때 알게 되었다.
귀찮음은 무력감이 아니다. 내 마음이 조용히 발신하는 구조요청이다. 과열된 감정이 잠시 식기를 바라는 마음의 기척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요청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외면할수록, 더 깊은 곳에서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귀찮을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더 친절해져야 한다.
쉬고 싶다는 마음을 죄책감으로 몰아가지 말고, 그저 ‘그럴 수도 있어’라고 다독여야 한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라는 비난 대신 “그동안 참 많이도 버텼구나”라는 위로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다 귀찮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살아?” 맞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하고, 세상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의 속도다. 누구나 각자의 리듬이 있다. 어떤 날은 금방 회복하고, 어떤 날은 더 오래 쉬어야 한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나는 안다.
귀찮은 날의 나 자신이, 한없이 늘어지고 의욕이 없는 그 순간의 내가,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그리고 그런 날이 있었기에, 다시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날들이 이어졌다는 걸.

그래서 나는 가끔, 그냥 가만히 있는다.
음악도 끄고, 핸드폰도 내려놓고,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다. 그렇게 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

지금 당신도 모든 게 귀찮은가?
그렇다면 이 글을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 중간에 닿아도 괜찮고, 그냥 저장해두기만 해도 좋다.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속도로 회복 중일뿐이다.

“오늘은 모든 게 귀찮아도 괜찮아.”
이 말이 지금 당신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문득, 다시 일어날 힘이 조금씩 차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살아간다.
그 귀찮았던 날들이, 사실은 우리가 잠시 멈췄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았던 시간이었다는 걸, 우리는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가끔은 모든 게 귀찮아도.
그럴 때도,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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