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을 날아서

어느 날의 나는, 그냥 밤이 되고 싶었다

by Helia

깊은 밤이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세상도 조용히 등을 돌린 시간.
그 고요한 틈 사이에서
문득 떠오른 노래 한 곡.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

조용히 흘러나오던 그 멜로디에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젠 지쳤어…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그런 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왔다.

나는 지쳐 있었다.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사람을 만나면 웃지만
혼자가 되면 허탈했고,
해야 할 일들은 쌓여만 가고
하고 싶은 일은 멀어져만 갔다.

그 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어디론가 날아갈 수 있다면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다고.


---

우리는 모두, 깊은 밤을 통과한다.

누군가는 회사 책상에 앉은 채
불 꺼진 사무실에서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답을 찾지 못한 채 머리를 싸매고 있고,

누군가는 이불속에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잊으려 하며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다.

누군가는 냉장고 앞에서
텅 빈칸과
지나간 시간들 앞에 멍하니 서 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자기만의 **‘깊은 밤’**을 지나간다.

그 밤은 어떤 이에게는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고립되고 막막하다.

그리고 그 밤을 어떻게 통과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시 다음 날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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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라진다는 말이 죽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존재를 잠시 쉬고 싶다는 뜻.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에서
그냥 ‘나’라는 사람을 잠시 내려두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런 상상을 하는 날이면
나는 꼭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지금 이 세상은 너무도 각박하니까
나는 날아가고 싶어…”

이문세의 낮은 목소리는
어쩐지 그런 밤의 속내를 잘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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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낮에는 견디느라 바쁘고,
웃느라 애쓰고,
해내느라 긴장했던 감정들이
밤이 되면 조용히 틈을 비집고 올라온다.

불 꺼진 방 안,
누워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감정들.

“넌 괜찮니?”
“왜 이렇게 힘들어졌니?”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늘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아줄 수 있는 건
유일하게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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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밤을 무서워했다.
그 고요가,
그 고독이,
나를 삼켜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밤이 있었기에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다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밤마다,
도망치기보다는
나를 데리고 함께 날아가기로 했다.

어디론가.
답이 없어도 괜찮은 곳.
길이 없어도 상관없는 곳.

마음속 작은 날개를 펴고
상상 속 어디론가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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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지금 뭐 하고 싶어?”
나는 가끔 대답하지 못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잊고 살아가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를 들으면
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하고 싶었던 것들’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한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한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한때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저 평온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루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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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깊은 밤 속을 나는 사람은
결국 아침을 만난다.

그 밤이 아무리 길어도,
그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해는 떠오른다.

다만,
그 아침이 올 때까지
우리는 혼자 날아야 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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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창밖을 본다.
잠들지 못한 도시의 불빛 사이로
내가 날아가고 싶은 밤의 끝을 상상해 본다.

어쩌면 나는
어디론가 떠나는 게 아니라
단지 이 자리를 조금 다르게 살아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덜 아프게.
조금 더 자유롭게.

그리고 그 마음이
나를 다시 내일로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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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세상은 너무도 각박하니까
나는 날아가고 싶어.”

그 노래한 줄로,
나는 내 마음을 다 말할 수 있었다.

그 말이
지금 당신의 마음에도 닿기를 바란다.

당신도 지금
어느 깊은 밤을 날고 있다면,
그저 무사히,
천천히,
당신의 날개로 날아가기를.

그리고
그 밤이 끝나는 그 순간,
당신이
다시 당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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