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미완의 존재
한 장의 그림이 있다.
그림이라기엔 너무 텅 비어 있어, 오히려 ‘흠집 난 흰 캔버스’에 가깝다. 연필선이 몇 줄, 지워진 색감이 얼룩처럼 남아 있고, 덧칠도 마무리되지 못한 채 끝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그 그림 앞에 서게 된다. 그곳엔 묘한 끌림이 있다.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여백과 숨결이 담겨 있는 듯해서.
우리는 자주 완성된 것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계획표는 정돈되어야 하고, 성과는 마무리되어야 하며, 관계도 어딘가에서 결론을 내야만 안심이 된다. “끝내야만 한다”는 강박, “무언가 되지 않으면 실패다”라는 잣대. 그 속에서 ‘미완성’은 실패의 다른 이름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완성된 것만이 아름다운 걸까?
어쩌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더욱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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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못한 편지가 있다.
쓰다가 멈춘 구절, 보내지 못한 인사, 다 담지 못한 미안함.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그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나는 가끔 그 이름을 부르며 혼잣말을 한다.
“잘 지내? 여긴,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어.”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안다.
사실, ‘잘 지내?’라는 말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을 건넨다.
미완의 관계, 미완의 작별, 미완의 사랑.
그 모든 ‘끝맺지 못한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완성은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형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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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완성하지 못한 소설이 있다.
처음엔 단편이었다가 중편이 되었고, 중편이었다가 장편이 되지 못한 채 멈춰버린 문서 파일.
수십 개의 열정적인 초고와, 그보다 많은 삭제된 문장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패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의 나’를 간직한 시간의 파편이다.
다시 쓸 수는 없지만, 그 기록을 지나온 나만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글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건,
그 이야기를 쓰던 나 역시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살아 있다는 건, 여전히 서사 중이라는 것.
종지부를 찍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징표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도 하나쯤은 끝내야 의미가 있지 않냐”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종종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끝낼 수 없었기에, 더 오래 남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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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도, 사랑도, 성장도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어떤 장면은 기억 속에서 영원히 멈춰 있고,
어떤 말은 영영 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수많은 가정법 과거가 한 사람의 마음 안을 떠돌고 있다.
그렇다고 후회만으로 하루를 채울 수는 없다.
미완성은 후회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끝내지 못한 것이 있다는 건,
아직도 그 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삶이 완성되어 버린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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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갈 무렵,
나뭇가지 위에 작은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보았다.
이름 모를 나무는 잎도, 꽃도 없이 마른 가지만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척박한 껍질 틈을 비집고 연둣빛 새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묘한 울림을 느꼈다.
그건 완성의 시작이 아니라,
미완의 끈질긴 약속이었다.
지금은 비어 있어도,
이 가지 끝에는 언젠가 꽃이 필 거라는 증거.
어쩌면 미완성이야말로 생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얼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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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내가 끝까지 쓰지 못한 글들,
미처 사과하지 못한 말,
완전히 잊지 못한 추억들.
그 모든 미완성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 모든 흔들림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손짓들이,
마침내 한 사람의 고요한 문장이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나에게 쓰는 가장 진실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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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이 아닌 채로 남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아직 말할 수 없는 슬픔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아직 꺼내지 못한 꿈도,
미완의 상태에서 우리를 지탱한다.
나는 오늘도 미완성인 채로 하루를 살아간다.
모든 것을 끝낼 필요는 없다.
끝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씩 나아가기만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걷고 있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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