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대화

다 말할 수 없어서, 다 들을 수 없어서

by Helia

우리는 늘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이 닿는 곳은 어쩌면 참으로 적막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자꾸만 허공을 맴돌고, 의미 없이 공중 분해되는 순간들이 있다. 분명히 말을 했고, 그도 고개를 끄덕였고, 표정은 이해의 색을 머금었지만—이상하리만큼 낯설다. 말이 닿지 않은 느낌이다. 말이, 말이 아니게 되는 순간.

나는 가끔 그런 대화를 떠올린다.
속이 들끓어 밤새 준비한 말들. 조심스레 건네지만 상대는 “그게 왜?”라고 묻는다. 아니면, “그 정도로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어진다. 이미 문은 닫혔고, 대화는 더 이상 대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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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

나는 말했고, 그는 들었지만, 그건 진심의 교환이 아니었다. 때론 듣는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차원에 있는 일인지 절절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고양이나 오래된 책장이 더 많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말하고 싶어 한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은,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맥락이다. 결국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는 문장을 누군가가 다 들어주길 바라는 일. 그 무거운 마음의 형태를 누군가 온전히 들어주는 것. 그게 사랑일지도, 우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바람이 번번이 어긋날 때, 우리는 지친다.
“말을 해도 소용없어.”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어.”
“그 사람은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런 단념이 반복되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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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그 대화가 참 이상했었다.
모든 단어는 맞았는데, 전혀 맞지 않았다.
예컨대 이런 말들—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나는 그냥 너 잘됐으면 하는 말이었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여?”

그 말의 조각들이 내 안에 찔러 들어와 날카롭게 날 망가뜨릴 줄은, 그 사람은 모른다. 아니, 모를 것이다. 그는 진심이었다고 믿고 있었고, 나는 그 진심을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이미 대화가 아니다. 서로 다른 해석을 입은 채, 평행선 위를 달리는 독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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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괴로운 건, 그 사람이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처받는 순간이다.
그의 말은 폭력이 아니었고, 조롱도 아니었고, 무시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도 그 사람스러운 말투였고, 방식이었고,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처받았다.
왜일까.

어쩌면, 나의 기준에서 그 말이 “내 감정에 닿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말을 건네길 바랐고, 그는 그의 경험 안에서 나를 바라보았기에 우리 사이엔 균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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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넌 왜 그렇게 대화에 진심이야?”
그 질문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대화가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와 말을 섞는다는 건, 그 사람과 마음을 섞는 일과 비슷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게 일상적인 언어였고,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다는 걸,
나는 스물다섯이 넘어가서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모든 대화가 깊을 필요는 없다.
모든 말이 진심이어야만 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단순한 안부로 하루를 지탱하기도 하고, 농담 몇 마디로 충분히 위로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영영 누구의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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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있다.

그건 잘못된 대화가 아니다.
그저, 맞닿지 않은 마음의 기록일 뿐이다.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눴던 날이면 멍하니 창밖을 본다.
서로의 입술은 움직였지만, 아무것도 주고받지 못한 채 공기 중에 증발한 말들.
문득, 그 말들이 다시 나를 찾아올까 봐 두려워지는 날도 있다.

어떤 말은 너무 날카로워서,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어떤 말은 너무 무심해서, 다시 떠올리면 손끝이 시리다.
어떤 말은 너무 허무해서, 끝내 설명조차 되지 않는다.

그 모든 말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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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할 것이다.

어쩌면 그 이해할 수 없는 대화 속에도,
미처 닿지 못한 진심이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그 사람이 애써 외면한 감정이 있었고,
내가 너무 서둘러 포기해 버린 문장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여전히 대화를 좋아한다.
말이 닿지 않아도,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래야 언젠가, 누군가와는 닿을 수 있을 테니까.

그 한 사람과,
긴 밤을 건너 같은 문장을 나눌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소망한다.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끝에서,
마침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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