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을 위해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위해,

by Helia

어떤 말은 한 번 듣고도 마음 깊이 스며든다.
“일기일회.”
글자 하나하나는 낯설지 않은데, 이 네 글자를 붙여 놓으면 왠지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一期一會.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만남.’
삶 속에서 마주한 이 모든 장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 뿐이라는 뜻이다.
우연처럼 마주친 오늘이라는 시간이, 실은 더없이 귀하고 절대적인 기회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게 된다.

처음 이 말을 들은 건 한 다큐멘터리 속 일본 다도를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찻잔을 건네며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기에 정성을 다한다”는 다도인의 말.
차 한 잔을 우려내는 일조차 그토록 진심일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하루는 너무 바쁘다.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드는 일들이 늘 반복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꾸 잊는다.
이 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이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이 시간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일기일회는 다정한 경고문 같다.
“지금 이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마세요.
지금 당신이 마주한 이 장면은 다시는 오지 않아요.”
이 한 문장은, 내가 매일을 더 조심스럽게 살아내도록 만든다.

나는 종종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내 곁에 있었을 때, 나는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 만남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때도 있었고,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한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마주친 적도 있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다음에 보자.”
“언젠가 다시 만나.”
“조만간 연락할게.”

그런 말들 속에 ‘다시’라는 단어가 꼭 들어있다.
하지만 인생은 반드시 ‘다시’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 한 번이 마지막이기도 하다.

그걸 안 이후로, 나는 헤어질 때 더 진심을 담으려 한다.
‘잘 가’라는 말속에 ‘고마워’와 ‘안녕’과 ‘행복해’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본다.
혹여 다시 못 볼지도 모르니까.

일기일회라는 말은 나에게 어떤 사람과의 짧은 인연을 떠오르게 한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던 낯선 사람.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말을 걸었고,
짧은 몇 마디 대화 끝에 그 사람이 건넨 한 문장이
지금도 내 삶에 남아 있다.

“그 책, 뒤쪽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 제일 좋아요.
읽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 말은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책장을 덮은 순간, 정말로 조금 괜찮아졌다.
그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문장과, 그 사람의 따뜻한 말투는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건 분명히 ‘일기일회’였다.
다시 마주칠 수 없었고, 그 순간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인연이
오래도록 내 마음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는가.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
카페에서 테이블을 마주한 사람,
거리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친 낯선 얼굴.

그들 중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짧은 시선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여운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일기일회는 말한다.
사소한 만남도, 의미 없는 순간도 없다.
그건 삶이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마주한 이 찰나의 순간이,
앞으로도 영영 다시 오지 않을 ‘한 번’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지나온 하루를 돌아본다.
어떤 사람과 마주했고, 어떤 풍경을 보았으며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곱씹어본다.

대부분은 평범하고, 특별한 사건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상 속에도 분명히 소중한 조각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노을,
친구가 무심코 건넨 위로,
아이의 웃음소리,
커피잔에 담긴 따뜻함.

그 모든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일기일회는 관계에도 유효하다.
가족, 연인, 친구—
매일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부모님과의 전화 한 통,
연인과의 저녁 식사,
친구와의 산책.

이 모든 것도 사실은 단 한 번뿐인 장면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멀어질 때마다
‘다시 보기 어려운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우리는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과도
뜻밖의 이유로 멀어질 수 있으니까.

일기일회라는 말은 나에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한 번뿐인 기회’로 바라보게 한다.

글을 쓸 수 있는 이 밤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이 시간도,
무심코 바라본 창밖의 비도
다시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시간 또한
우리 둘의 ‘일기일회’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一期一會.
언제나 다시 있을 것 같지만
결국 한 번뿐인 이 장면, 이 사람, 이 마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더 사랑하려 한다.
한 번 뿐이라는 걸 알게 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더 다정해질 수 있으니까.

잘 가라는 말에도 사랑을 담고,
고마워라는 말에 진심을 실으며,
지금 이 순간을 더 정성껏 살아내는 일.

그것이
우리가 매일을 견디는 방식이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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