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글이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할 때
누군가는 브런치를 그저 ‘글을 쓰는 플랫폼’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브런치는,
글을 쓰는 삶을 다시 믿게 해 준 ‘무형의 증명서’다.
긴 침묵 끝에 다시 펜을 들게 만든 것,
머뭇거림 끝에 내 이름으로 글을 게시하게 한 것,
어쩌면 내가 나를 다시 불러내는 통로가 되어준 것—그게 브런치였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 ‘세상에 자신의 문장을 건넬 수 있는 장소’는 단순한 웹사이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곳은 일종의 책상이자, 무대이며, 때로는 고백의 방이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삶을 다시 조각하고, 기억을 말랑하게 다듬었으며, 감정을 하나씩 꺼내어 눌러 담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브런치가 편안한 공간은 아니었다.
한 줄을 쓰고 지웠다.
첫 문장 앞에서 몇 시간을 멈췄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지 않으면 어쩌나,
부족한 표현력 때문에 상처만 주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이 나를 붙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행’이라는 버튼을 누르고 나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 안의 이야기를 글로써 구조화하고, 타인에게 건네는 그 과정은
생각보다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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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의 연재는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천천히, 다시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문으로 시작했다. 300자, 500자.
짧은 문장들 사이로 마음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공감 버튼 하나, 짧은 댓글 한 줄이 나를 움직였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감정, 저도 느껴본 적 있어요.”
“오늘 하루 위로받고 갑니다.”
이 짧은 문장들이 내게는 등단장보다 더 큰 환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감각.
어딘가에서 나의 문장을 마음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은
글을 쓰는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플랫폼을 떠나지 않게 하는 힘이 되었다.
브런치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거리를 줄여주었다.
누군가는 댓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누군가는 조용히 구독만 하고 떠났지만—
그 모든 흔적은 나에게 글을 계속 써도 괜찮다는 허락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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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또 하나의 '일기장이자 거울'이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일은, 지금의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여전히 품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과 같다.
때로는 어리고 모난 감정도 있었고,
때로는 치기 어린 표현도 있었지만,
그 모든 문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곳에서의 글쓰기는 완벽해지려는 시도가 아니라
진짜 내가 되려는 연습이었다.
나는 이제 브런치를 통해 매주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클래식을 추천하는 매거진도 있고,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동화도 있다.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소설 속 인물들은,
결국 나의 결을 닮아 있기에,
매 편의 글마다 나는 나를 꺼내어 살핀다.
브런치의 발행 버튼은 내게 ‘완성’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하나의 흔적,
또 다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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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가 내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나도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이구나.”
세상은 종종 ‘누가 썼는가’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디에 실렸고, 몇 부가 팔렸고, 누가 추천했는가로 작가의 가치를 재단하려 한다.
하지만 브런치는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저 쓰는 사람일 뿐이다."
이 평범하고 단순한 사실이, 내 삶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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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살아남았다.
감정이 무너졌을 때도, 삶이 흔들렸을 때도
브런치라는 플랫폼 안에서 다시 글을 쓸 수 있었기에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말 대신
‘글을 살아낸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곳은,
그 삶을 조용히, 진심으로 지켜봐 준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