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날들이 지나면

고통의 졸업식

by Helia

나는 또래보다 유난히 일찍 ‘그날’을 맞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직 리코더를 불며 줄넘기를 하던 나이에,
피로 물든 속옷을 들고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건 교과서에서 보던 ‘신비’도, 엄마가 말하던 ‘축복’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빨리 찾아온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놀랐다.
무서웠고, 부끄러웠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왜 다른 친구들은 아직 뛰어놀고 있는데 나만 이 낯선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지.

그 이후로, 학창 시절은 거의 ‘생리’라는 단어로 덮여 있었다.
극심한 생리통에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양호실 침대에 누워 신음하며 숨을 골랐다.
수업 중간, 피가 바지에 새어 얼룩이 번지던 날에는
모두의 시선이 꽂히는 듯한 수치심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교실을 나서던 내 뒷모습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작고 위축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대형 생리대를 착용해도 부족했다.
가끔은 기저귀처럼 두툼한 것을 차고서도,
흘러나오는 피를 다 받아내지 못해 또 얼룩졌다.
교복 아래 숨긴 속옷과 피의 흔적은 늘 공포였고,
그 공포는 자존감을 삼키고, 나를 조용히 고립시켰다.

그렇게 수년을 버텼다.
달마다 반복되는 통증, 멈추지 않는 출혈,
냄새와 냉대, 고립과 수치, 피로감과 무기력.
누군가는 생리를 여성의 증표로 여기지만,
내게 생리는 늘 견디고 참아야만 하는 징벌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기다렸다.
폐경.
그 말이 나를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믿었다.
다들 두려워한다는 그 단어가, 내겐 희망처럼 다가왔다.
‘이 고통이 언젠가는 끝이 날까?’
그 끝이 폐경이라면, 나는 언제든 두 팔 벌려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어느덧 삼십 대를 지난 어른이 되었다.
출산의 경험도 겪었다.
한 생명을 품고, 낳고, 키우며
내 몸이 또 한 번 얼마나 강하고도 아플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 한 번으로 충분했다.
생명을 품었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경이로운 계절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의 이면에는
질병 같은 피로와 찢어지는 고통,
눈물과 인내, 감정의 수렁이 함께했다.

그렇기에 나는 두 번째 계절을 바라지 않는다.
출산은 기적이었지만,
그 기적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찬란했다.
이제는 내 몸에게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폐경을 말할 때, 흔히 이렇게 말한다.
“여자로서 끝난 거야.”
“이젠 늙었다는 소리잖아.”
“정체성이 사라지는 기분일걸?”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게 폐경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의 졸업식이다.
그 오랜 피의 시간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를 위해 숨 쉴 수 있는 계절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나는 폐경이 오면 조용히 나만의 자축파티를 열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작은 케이크에 초 하나를 꽂고,
붉은 꽃다발 하나를 손에 들고,
내게 말할 것이다.
“정말 잘 살아냈어. 수고했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내 통증,
말로 다 전할 수 없었던 내 몸의 언어들,
그것들을 다 품고 살아온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 사실을 오롯이 내게 선물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생리를 한다.
여전히 그날이 오면 통증으로 허리를 굽히고,
잠에서 깨고, 온몸이 뜨겁고, 숨을 고른다.
그러나 예전처럼 두렵진 않다.
왜냐면 이제 곧
그 시간이 정말로 끝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울에 빠질지도 모르고,
무기력에 휩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설렌다.
몸이 나를 벌하지 않아도 되는 삶,
매달 달력에 검은 점을 찍지 않아도 되는 해방.
그 자유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묵묵히 살아간다.

폐경은 ‘여성성의 상실’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성의 확장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자궁으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나는 나의 말, 나의 눈빛, 나의 온기로 세상을 감싸 안을 수 있다.
나는 이제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더는 혈의 상처가 아닌,
지혜의 선으로 내 삶을 그려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선이 얼마나 단단하고 유연한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폐경이 오면, 나는 울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창문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조용히 웃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로 살 수 있는 계절이 왔구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