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감도를 허락하는 사회
“그 말이 왜 그렇게 들려? 그냥 농담이었잖아.”
“아니, 그 정도는 다들 넘기던데.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너 요즘 너무 예민하다. 별 말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받아들여?”
살면서 이 말을 안 들어본 사람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그건 네가 예민한 거야.”
그리고 이 말은, 늘 상황의 본질을 흐려놓는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반복되는 경험에 차츰 내 감정의 기준이 무너졌다. 저 사람이 말하는 ‘별것 아닌 말’이, 왜 나에게는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는지. 왜 아무렇지 않다는 그 말이 내 하루를 멍하게 만들고, 심지어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건지. 그런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가끔은 스스로도 헷갈렸다. 그저 민감한 성격이라서 그런가, 사회성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정말 내 유년 시절에 결핍이 있어서 모든 말에 과하게 반응하는 건가.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 하루 종일 마음을 쓸어내리고, 일의 맥을 놓치는 날이 생길 때면, 나 자신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상처가 된 건, 그 말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할 수 있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가 내 마음을 헤아릴 생각도 없이, 자신의 말투와 분위기만을 기준 삼아 ‘별 말이 아닌’ 말을 툭 내뱉고는, 그 반응에 책임지지 않으려 할 때. 그게 문제였다.
마치 너는 원래 그 정도의 말에도 상처받는 유리멘털이니, 애초에 문제는 네 안에 있다는 식.
결국, 나는 늘 방어해야만 했다. 내 감정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왜 그 말이 나에게 아팠는지.
그 설명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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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말들이 괜찮지 않았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그래서 네가 사회생활이 힘든 거야.”
“그 정도도 못 받아들이면 어떻게 살아.”
이런 말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다정한 말 한마디, “괜찮아. 너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그 말 하나면 풀렸을 감정들을, 왜 그렇게 꺾어야만 했을까.
예민하다는 말은 결국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문제 삼는 사람’에게 붙이는 꼬리표였다. 감정이 없는 사람, 무던한 사람, 둔감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환영받는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 냉정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반응하는 사람은 피곤하고,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외면받기 쉬우니까.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부터, 누군가의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일에 "네가 문제야"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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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민하다는 건 감정의 레이다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작은 떨림에도 반응하고, 말의 뉘앙스를 캐치하며, 미세한 온도 변화도 감지하는 섬세함. 그건 약점이 아니라, 감정의 세밀한 감각이다. 그 감각 덕분에 우리는 글을 쓰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감각이 ‘문제’가 되는가?
그건 감정의 세기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날카로운 말도 유머고, 다른 누군가에겐 부드러운 말조차 칼날이 될 수 있다.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과도하다'라고 단정 짓는 순간부터 대화는 단절된다.
상처는 그런 틈에서 생겨난다.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감정을 단속하려 드는 말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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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건, 더 다정한 대화다.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 말이 너에게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내가 몰랐던 너의 감정이 있었구나.”
이 짧은 말들이 우리 사이의 수많은 오해를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탓하지 않고, 반응을 재단하지 않는 말들.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인정하는 언어들.
나는 이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너는 너무 예민해”라고 말하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그저, 나의 감정을 정직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 감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 감정을 무시하고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더 예민한 세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