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앞에서

by Helia

“나이 먹었으니, 이제는 좀 괜찮겠지?”
그 말은 착각이었다.
어릴 땐 몰랐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언가를 극복해 내는 줄 알았다.
자라면서 조금씩 강해지고, 익숙해지고, 두려움은 언젠가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든 게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도,
치과 가는 건 여전히 무섭다.
진료실 문 앞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면,
속으로 수십 번 같은 말을 되뇐다.
‘아플까 봐 무서워.’
‘입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고통을 참는 시간이 싫어.’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게 너무 두려워.’

진료실 안에 울리는 기계 소리,
마취 주사 바늘의 차가운 감촉,
입안 깊숙이 울리는 드릴 진동.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조금도 자라지 않은 마음으로.

어떤 사람은 말한다.
“뭐가 무섭냐, 그냥 하고 끝나면 되지.”
“아이들도 잘만 받는데.”
하지만 두려움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공포는 그 자체로 나이를 초월하는 감정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고통에 익숙해지는 건 아니다.
그저 표현을 덜 하게 되는 거다.
입술을 앙다물고, 손을 꼭 쥐고,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괜찮아, 금방 끝나. 참을 수 있어.’
그러나 사실은, 안 괜찮다.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울고 있다.

치과 진료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겁이 많을까.
어릴 적 무서워서 손을 꼭 잡았던 엄마의 손이,
그립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깊은 위로다.
나이가 들어도 그 손이 여전히 그립다.
누가 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손만 잡아준다면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은 마음.
그런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치과만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병원 냄새가 무섭다.
사람 많은 곳은 숨이 차고,
낯선 사람 앞에 서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비 오는 날엔 유독 우울하고,
늦은 밤엔 쓸쓸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오래 흔들리고,
가끔은 웃는 것도 힘에 부친다.

이렇게 보면, 나는 여전히 여리다.
나이가 들었지만 강해진 건 아니다.
그저 아픔을 다르게 껴안는 법을 배워온 것뿐.
슬픔을 눈물이 아닌 글로 풀어내고,
두려움을 외면이 아닌 묵인으로 받아들이는 법.
그게 내가 배운 어른스러움이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거야.”
그건 틀렸다.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감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무서워하는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이다.

치과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
입안은 얼얼하고 어색하다.
말을 하면 혀가 꼬이고,
웃으려다 입술이 찢어질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계산을 하고, 약을 타러 가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간다.
속으로만 중얼인다.
“그래도 잘했다. 참았어.”

그 한마디가 나를 위로한다.
누구도 칭찬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조용히 해주는 격려.
“오늘의 나, 잘 버텼어.”

나이가 들면
이런 말들이 더 필요해진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에,
더 자주 나를 어루만져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무서운 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서움을 안고
한 걸음 더 내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두려움 하나.
아직도 치과가 무서운 나에게,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괜찮아.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도,
조금씩 익숙해질 수는 있어.
다음번에도 또 무서울 거야.
그래도 넌, 또 가겠지.
그리고 또 버텨내겠지.

그게 지금의 나다.
그리고
아직도 자라는 중인,
조금은 연약한 나라는 사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