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낭만은 어디쯤에서 멈췄을까
어느 날이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하늘이 높고 푸르다는 걸 느끼지 못한 채 스크롤을 내리기 바빴다. 책을 읽어도 문장이 박히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울컥함이 없었다.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
“아, 내가 낭만을 잃어버렸구나.”
낭만은 무언가를 특별하게 여기는 태도다.
작은 것에서 큰 감정을 느끼고, 쓸모없는 일에 마음을 주고, 아무 쓸모없어 보여도 그냥 좋은 것에 애정을 품는 마음.
예전엔 그게 가능했다.
창문에 맺힌 빗물 하나에도, 우연히 마주친 문장 하나에도 심장이 뛰었다.
누군가의 웃음에서 하루가 환해지고, 벚꽃이 지는 장면에서 멍하니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감정들이 메말랐다.
낭만은 생존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현실은 무겁고, 하루는 숨 가쁘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쌓인 청구서를 정리하고, 납기일을 맞추고, 통장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한다.
그 속에서 낭만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감탄하고, 사랑에 금세 빠지고, 혼자서도 찬란하게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감정에 여백을 두는 법을 잊어버렸다.
마음이 메마르니, 모든 게 기능이 되어버린다.
꽃은 장식이고, 편지는 쓸데없는 노력이고, 고백은 낭비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삶은 유효하지 않은 파일처럼 느껴진다.
성실하게 살아도 그 속에 감정이 없으면, 그건 어떤 생존의 반복일 뿐이다.
마음이 마르면, 삶은 버텨지는 것이지 살아지는 게 아니다.
나는 가끔 혼자 있는 카페에 앉아, 핸드폰을 꺼두고 커피 향을 맡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최근에 마음을 쏟아본 적은 있었을까?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문 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낭만은 스스로 살아 있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낭만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만 깃드는 어떤 온기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살아 있지 않았던’ 걸까.
낭만이 메말랐다는 말은, 감정이 말라붙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은 곧,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든, 무엇인가를 향한 애정이든, 이유 없는 설렘이든.
그 감정 하나가 내 일상에서 소멸될 때, 낭만은 증발한다.
나는 예전의 나를 자주 그리워한다.
작은 엽서를 고이 모으던 시절의 나, 매일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던 나,
문득 보고 싶어 친구에게 손 편지를 쓰고, 아무 이유 없이 거리를 걷던 그때의 나.
그때 나는 낭만으로 살아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든, 무엇을 좋아하는 감정이든 간에,
그 모든 감정들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고, 시간은 모든 걸 휘발시키며,
애써 품었던 낭만도 삶의 현실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그래서 감정을 아끼게 되고, 기대를 접고, 가능성보다는 손해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살아남는 삶이 반드시 살아있는 삶인 건 아니지 않은가.
낭만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것을 믿는 마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여기는 믿음.
실용적이지 않아도, 보잘것없어도, 누군가는 그걸 붙잡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낭만을 믿고, 그래서 살아진다.
어느 날,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말했다.
“요즘, 왜 이렇게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그 말에 담긴 건 나를 향한 불만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나는 아마도 나 자신에게서 낭만을 거둬들인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사소한 것에 마음을 다시 기울이기로 했다.
정해진 길 말고 다른 골목을 돌아가고,
길가에 핀 들꽃을 바라보고,
누군가에게 괜히 안부를 묻고,
마음속에 떠오른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그게 낭만의 회복이었다.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 조용한 회복은 다시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감각이 깨어 있는 사람으로,
가슴이 반응하는 사람으로.
낭만은 화려한 이벤트나 대단한 감동이 아니라,
작고 느린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온기였다.
잊고 지내던 감정을 스스로에게 다시 허락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낭만은 쉽게 메마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것을 다시 적셔주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걸.
감정이 마를 때마다, 나는 내 안의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낭만을 향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태도 안에서, 다시 살아 있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