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잔 입버릇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기로 했다

by Helia

“우리 그만하자.”

그 말,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차가운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 했지만, 목은 마른 채로 굳어 있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땐 몰랐다. 아니, 모른 척했다. “헤어지자”는 말이 진짜 이별의 예고장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에겐 ‘헤어지자’가 습관처럼 붙어 있는 말이라는 걸, 나는 꽤 오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꺼낼 때마다 떨리는 눈빛이 있었다. 목소리엔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고, 단호함보다는 망설임이 많았다. 나도 그걸 안다. 그래서 매번 잡았다. ‘진심이 아니겠지’, ‘지금은 감정이 격해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넘기며, 나는 몇 번이고 내 자존심을 꺾어야 했다. 마음이 어질러질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했고, 그 사람을 달래야 했다. 말 그대로 ‘이별의 책임’을 매번 내가 짊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그 사람이 그 말을 꺼낼 때 눈이 떨리지 않았다. 목소리도 담담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고작 그 한 마디를 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내가 묻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말이 있었던 사실조차도 흐릿하게 묻힐 만큼 일상적이었다. 차라리 싸우고 나서 감정의 끝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받아들였을 텐데, 이건 달랐다. 감정도, 고민도, 설득도 없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헤어지자’라는 말.

사실 그건 협박이었다. 버릇처럼 내뱉는 그 말의 정체는, 나에게 통제력을 쥐고 싶었던 마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헤어지자”라고 말하면 내가 잡을 걸 알았고, “그래, 알겠어”라고 말하지 못할 걸 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감정을 전달하는 대신, ‘헤어지자’는 단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든, 결국 끝내지 못할 걸 아니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애정은 상처로 말하지 않는다. 애정은 이별을 입버릇 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오래 좋아했고, 오래 붙들었다. 아마 그 사람은 자기가 그런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얼마나 가볍고 무책임한 지조차도. 그는 늘 내가 잡아줄 거라 믿었고, 나 역시 늘 그 사람을 잃을까 봐 무서워하며 그대로 반응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놓았다. 너무도 평범한 날이었다. 싸우지도 않았고, 상처도 크지 않았다. 그냥 그날도 그 사람은 “헤어지자”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정말, 아무 말도.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껐다. 연락이 왔다. ‘오늘은 왜 대답 안 해?’ ‘장난이었잖아.’ ‘진짜 헤어지자고 한 거 아니야.’ 그 사람은 자신이 늘 그래왔고, 내가 늘 그걸 받아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을 것이다.

나는 회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을 다시 보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은,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 틀렸다. 그는 감정을 언어로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관계를 자꾸만 엎어버린다. ‘헤어지자’는 말은 너무도 큰 파괴력을 갖는다. 그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은 천 번도 더 무너질 수 있다. 그 말이 사랑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다.

이후 나는 깨달았다. 정말 중요한 사람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헤어지자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조심스럽고, 더 성실하게 말하려 애쓴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가 다짜고짜 그런 말을 내뱉으면, 되묻는다. “진짜야?” 아니라면, 그런 말은 꺼내지 말라고 한다. 말은 마음의 옷이다. 아무렇게나 입고 벗다 보면, 마음도 너덜너덜해진다.

나는 이제 다시는, 그런 사랑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싸우지 않는 사랑은 없다. 갈등이 없는 관계도 없다. 하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헤어짐은 결국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상대를 지치게 한다. 나도, 그 사람도, 그 지치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아마 그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헤어지자’를 쉽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가 그 말 앞에서 눈물지으며 다시 그를 붙잡아주고 있을지도. 하지만 그 끝이 어떨지는 안다. 나처럼, 결국은 지쳐 떠날 것이다. 언젠가 그 말의 무게를 진짜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진짜 마지막 순간을.

입버릇처럼 ‘헤어지자’고 말하던 사람을, 나는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감정이 격해질수록, 말은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랑은 말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말로 지켜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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