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것이란
추천 클래식 곡:
Adagio for Strings – Samuel Barber
사람들이 무난하게 넘기는 말 중 하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 문장은 마치 부드러운 포장지처럼 갈등을 감싸고, 불편한 진실을 미뤄두게 한다. 언뜻 너그러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눌려 있고, 목소리를 삼킨 채 웃는 얼굴들이 숨어 있다.
나는 그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분명 억울했고, 상처받았고, 피하고 싶었고, 바꾸고 싶었던 일인데도 누군가는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지나가." 그 말은 늘 묘하게도 내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리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그렇게 나를 달래며, 어떤 감정은 조용히 묻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말은 때때로 아주 편리한 방어막이 된다.
상대와 부딪치지 않고,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는 평화의 제스처. 하지만 그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말로 좋은 것을 택한 결과였을까. 아니면, 좋은 척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우리의 무력함일까.
어릴 적 나는 갈등이 무서웠다. 큰 소리로 말다툼하는 부모님을 보면, 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가능한 한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누가 화내지 않게, 실수하지 않게, 눈치 보며 지냈다. 누군가 내게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그 순간 나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내 감정은 항상 후순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익숙해진 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말은 내게 방패였고, 동시에 족쇄였다. 누군가와 다투기 싫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참는 쪽을 택하면 상황은 곧 잦아들었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고, 상황은 원만하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늘 나만 남아있었다. 억울함, 서운함, 답답함.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감정의 댐이 무너질 듯 위태로워졌다.
문제는, 내가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말할 때마다,
실은 스스로에게 “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셈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상황을 위해 내 감정을 제쳐두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내 마음도 무뎌지고 만다. 무엇이 기쁜 일인지, 어떤 게 슬픈 일인지조차 헷갈릴 만큼.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게 되고, 무조건 둥글게, 무조건 조용히 지나가려는 태도가 몸에 배게 된다.
물론, 세상엔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배려가 ‘나를 지우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꼭 질문해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
그동안 참았던 마음을 돌아보고, 내 안의 불편한 감정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시간.
좋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 불편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대화, 그것이 진짜 '좋은 것' 아닐까.
요즘 나는,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기. 피곤하면 "좀 쉬고 싶다"라고 솔직히 말하기. 억울하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고 정직하게 말하기.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꺼내보는 것, 그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때로는, 싸워야만 지킬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말을 덜 쓰게 된 요즘, 나는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진짜 감정을 나누고,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단단한 관계가 쌓여간다. 억지로 웃으며 상처받기보다는, 솔직하게 말하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
진짜 좋은 것은, 언제나 편하지 않다.
하지만 진심에서 비롯된 다정함은, 때론 불편함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