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낙관주의자에게도 없는 게 있다

“강한 사람”이라는 말의 무게

by Helia

추천곡 -Arvo Pärt - Spiegel im Spiegel


낙관적인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듯 보인다. 비가 와도 곧 갤 거라 믿고, 일이 틀어져도 더 나은 방향으로의 전환이라 말하며, 사랑이 떠나도 언젠가 다시 좋은 인연이 찾아올 거라고 확신한다. 그들의 시선은 늘 희망을 향하고 있고, 마음속에는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라는 온기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없는 게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긍정의 마음조차,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르는 것을 향한 두려움과 상처의 흔적 위에 조심스럽게 지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낙관주의는 태생적 기질인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선택이다. 매일 쏟아지는 절망 속에서도 어딘가에 희망의 끈을 묶어두려는 의지, 아니면 끊임없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주문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바람이 불면 꽃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꺾일 수도 있다는 걸. 그렇기에 그들은 자주 혼자 울고, 아무도 모르게 좌절하며, 입술을 깨물며 버틴다.

낙관주의자에게도 없는 것. 그것은 어쩌면 완전한 무결함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들이 어떤 감정에도 굴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고통에 무너지지 않으며, 실망에도 여전히 미소를 지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다. 슬플 때면 무너지고, 지칠 때면 주저앉는다. 단지 다른 이들보다 회복이 조금 빠를 뿐이다. 혹은 애써 회복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세상을 향해 다시 웃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한때 낙관주의자였다고 믿었다. 아니, 낙관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상처에 약하고, 미래가 두려웠고, 사람에게 쉽게 지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안 괜찮은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해야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서, 웃음으로 방어막을 치곤 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의외로 강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위로였는지, 그들이 모른 채 내 어깨에 얹은 ‘강함’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 나는 그때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낙관주의자에게 없는 또 하나는, 마음껏 무너질 수 있는 자유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밝은 사람에게 밝기를 기대하고, 항상 괜찮은 사람에게 늘 괜찮음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낙관적인 사람은 무너질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너는 잘 버티잖아.” “너는 늘 씩씩하잖아.” “네가 그럴 리 없어.” 그런 말들은 때때로 큰 돌이 되어 감정의 흐름을 틀어막는다. 결국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기대고 싶어도 어깨를 찾지 못한 채,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요히 아파야 한다.

진짜 낙관주의자는 자기감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어둠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미소를 지으려 애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웃음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슬픔을 이겨낸 증거는 아니라는 것. 여전히 아프지만,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낙관주의자에게 없는 마지막 하나는, 끝없는 믿음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들도 가끔은 의심한다. 과연 이 일이 잘 풀릴까.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저 사람은 정말 날 좋아했던 걸까. 나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낙관은 믿음과는 다르다. 믿음은 확신에 가까운 것이라면, 낙관은 바람에 가깝다. 바람은 늘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람을 붙잡는 마음. 그게 바로 낙관주의자의 마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제 낙관주의자를 볼 때, 밝은 모습 뒤에 있는 무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웃고 있을 때, 그 웃음의 깊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너는 늘 괜찮아 보인다”는 말보다는 “너도 힘들 때는 기대도 돼”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웃는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 기운차게 걷는 이에게 쉬어가자고 말하는 것, 그것이 진짜 낙관주의자에게 필요한 다정함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낙관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긍정의 힘, 밝은 에너지,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시선. 하지만 가끔은 그들의 말 없는 응급실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버티고 있다는 건, 여전히 아프다는 뜻일 수 있다. 회복 중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새로운 긍정이 아니라, 지금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낙관주의자에게 없는 건, 아픔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분명 아픔은 있다. 다만 없는 것은,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안전한 공간, 그리고 ‘너는 강하니까 괜찮겠지’라는 말 없는 기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밝은 빛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살지만, 그 빛이 때때로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이제는 알아야 할 때다.

낙관주의자도 인간이다. 무너진다. 주저앉는다. 그리고 다시, 아주 조용히 일어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