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내가 왜, 그렇게까지 참아야 했을까

by Helia

운동장 끝 그늘에서 가방을 멘 채 서 있었다.
친구들은 반짝이는 목소리로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교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니, 꺼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그 말이 고요하고 단단하게 태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억울해서였다.
분명 같이 장난쳤는데, 혼난 건 나였고
울고 있는 아이 옆에 서 있던 나는
그 상황의 원인처럼 지목당했다.

“너부터 사과해.”
나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삼켰다.
‘내가 왜? 정말, 내가 왜?’

그 순간부터였다.
억울함, 불편함, 침묵 속 감정들이
전부 하나의 문장으로 응축되기 시작한 것은.

나는 늘 착한 아이였다.
밥상 앞에서는 말조심하고,
화가 나도 참아야 했고,
눈물이 나도 혼자 울어야 했다.

‘네가 이해해라.’
‘너는 다를 줄 알았어.’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나는 이해했고, 다르려고 했고, 말을 삼켰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혼자 방 안에서
말없이 울고 있었다.
무슨 감정인지도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문득, 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내가 왜…?”

살면서 수도 없이 그 말을 했다.
사과해야 할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너부터 사과해’라는 말을 들을 때.
모두가 잘못했지만 나만 혼나고,
다들 모른 척하는 상황에서
침묵을 깨는 역할을 해야 할 때.

왜 나만 참아야 하는지,
왜 나만 책임져야 하는지,
왜 나만 설명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내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종종 ‘착하다’는 말로
나의 무기력을 미화했다.
참을성이 많다고 했고,
배려 깊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늘 전제가 있었다.
‘그래서 너는 괜찮지?’
‘네가 좀 더 참고 이해해 주면 안 될까?’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무너졌다.
왜 나만 항상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내가 왜?”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말은 단지 억울함의 표현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이 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늘 선택되지 않는가.”
“왜 나는 늘 가장 마지막인가.”
“왜 나는 존재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가.”

이제는 안다.
그 질문은 내가 나를 부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잃지 않으려 했던
애틋한 저항이었다는 걸.

나는 한동안,
내가 누구인지 잊은 채 살아갔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고,
불편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늘 먼저 손 내밀고, 이해하고, 참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울어버렸다.
누가 상처를 준 것도 아니고,
누가 모욕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내 편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내 편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날, 나는 거울 앞에 앉아
천천히, 확실하게 말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이 말을 하자.
내가 왜, 그렇게까지 참아야 하지?”

이제 나는 ‘내가 왜’라는 말을
내 안에서 외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려고 할 때,
누군가 나의 몫을 쉽게 취하려 할 때,
누군가 나의 감정을 사소하게 여길 때,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내가 왜, 거기까지 내려가야 해?”
“내가 왜, 그 말까지 받아들여야 해?”

예전 같았으면 웃으며 넘겼겠지만,
이제는 웃지 않는다.
무례함엔 선을 긋고,
불편함엔 거리 두기를 한다.

그건 이기심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보존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사람이 돼라’,
‘다 받아주라’,
‘세상은 너를 보지 않아도 너는 너를 지켜야 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왜 나는 나를 지우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왜 나는 이해받지 못하면서도 이해해야 하나.
왜 나는 미움받지 않으려고
늘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하나.

이제 나는 안다.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비로소 내가 내 편이 된다는 걸.

“내가 왜”는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하는 말이 아니라,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내가 누구인지를 지키기 위한 문장이다.

그 문장 하나로
나는 스스로를 다시 붙들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는 완전하지 않다.
지금도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누군가의 기대에 또다시 맞추려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되묻는다.

“내가 왜?”
그리고 곧바로 덧붙인다.
“그럴 필요 없어.”
“넌 이미 충분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그 말을 건네고 싶다.

혹시 지금,
누군가의 말 앞에서
이유도 없이 작아진 채 서 있는가?

혹시 지금,
억울한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
이상하다는 걸 아는데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속으로 조용히 이 말을 꺼내보기를 바란다.

“내가 왜.”

그 말 하나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 말 하나로 당신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싸워야 할 때다.
나의 몫을, 나의 감정을, 나의 자리를
스스로 지켜야 할 때다.

누군가 나를 몰라줘도 괜찮다.
누군가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
다만, 내가 나를 놓치지 않으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나를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꿈꾸고,
내가 지켜온 것들을
말 한마디로 무너뜨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말하자.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내가 왜.”

그 말이 언젠가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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