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당신은 걷고 있습니다
그날,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가을이 막 들어선 캠퍼스, 붉게 물든 단풍 아래에서 혼자였다.
강의도 없고, 약속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던 오후.
햇살은 유난히 투명했고, 하늘은 속이 비칠 만큼 얇았지만
내 마음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누가 그랬다.
“청춘은 반짝이는 시기야.”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들리는지를 실감했다.
청춘은 늘 아름답다고 한다.
빛나고, 젊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 찬란함 속에서 유독 자주 길을 잃었다.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이 날 삼킬 때,
세상이 무심하게 등을 돌리는 것 같던 순간.
그 모든 시간들이 바로 청춘이었다.
나는 자주 불안했다.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언제쯤 괜찮아지는 건지,
이 길의 끝은 도대체 어디쯤인지.
지금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반복한다.
스무 살이 넘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스물다섯이 되면 익숙해질 줄 알았고,
서른이 되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청춘은 나이를 기준으로 끝나지 않았고,
불안은 그 경계를 알지 못했다.
스물셋 여름, 무작정 기차를 타고 바다로 향한 적이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도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착한 바다는 조용했고, 바람은 내 안의 감정을 훑듯 불어왔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더 슬펐다.
돌아오는 기차 안,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감정이 언젠가 글이 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를 문장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청춘은 이상하게 모순적이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이미 너무 많이 지쳐 있고,
누군가의 시작을 축하하며
동시에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고,
사랑하고 싶은데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청춘은 유난히 조용하고 외롭다.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나는 날,
누군가의 SNS를 보며 나를 비교하게 되는 순간,
내가 나로서 충분하지 않다는 감정에 휩싸일 때.
그 모든 작고 고요한 아픔들이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청춘은 실패해도 괜찮은 시기”라고.
하지만 정작 그 실패를 감당해야 하는 건
청춘 그 자신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지금의 청춘들은
누구보다도 성실히 아파하고 있지 않나 하고.
누구보다도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런 이들에게 ‘괜찮다’는 말은 때때로 무례하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당신은 지금, 정말 잘 살아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아직 청춘의 한복판에 있다면,
혹은 이미 지나온 그 시절을 조용히 돌아보고 있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청춘은 어떤 얼굴이었나요?”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의 옅은 향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취업과 경쟁의 단어일 수도,
어떤 이에게는 상실과 이별의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었든, 청춘은 그 사람을 만든다.
다만 너무 아프게 굳지 않기를,
지나간 자리마다 상처 대신 무늬가 남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잊지 말자.
청춘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때로는 실패도 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하며,
사랑도 오해도 뒤엉키는 시간.
그 모든 혼란이 청춘을 만든다.
그러니 청춘이여,
조금만 더 너그러워도 된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모든 걸 잘 해내지 않아도 괜찮고,
무언가를 잃었다고 너무 오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나의 청춘이 완전히 지나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불안과 고독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고,
지금도 어떤 순간은 스물두 살의 나처럼 흔들리니까.
그렇기에 더욱
지금의 청춘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반짝이고 있어.
조금 어두운 밤이겠지만,
그 속에서 네 안의 빛은 꺼지지 않았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너는 계속해서 자라고 있고,
버텨내고 있으며,
누군가의 세상에서는
이미 큰 위로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믿는다.
지금의 당신이 언젠가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기를.
그 모든 외로움과 실수를 품은 채
‘그때의 나, 참 애썼구나’라고 말할 수 있기를.
지금도 늦지 않았다.
청춘은 어쩌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청춘이여,
조금 느려도 괜찮다.
한참을 돌아가도 괜찮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
기억하자.
당신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부디
조금 더 믿어주기를.
조금 더 안아주기를.
조금 더 기다려주기를.
당신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당신은 걷고 있다.
한 걸음씩,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