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를 열 때

닫힌 뚜껑 너머의 빛

by Helia

살다 보면, 손끝이 떨릴 만큼 두려운 순간이 있다.
닫힌 뚜껑 하나 앞에서,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순간.
그건 단순한 나무상자가 아니라, 내 지난날과 비밀, 삼켜버린 말들이 뒤엉킨 작은 우주다.

나의 상자와 마주했던 날을 기억한다.
겉은 고요했지만, 손잡이를 잡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도, 동시에 전혀 모르는 감각.
마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깊이.

뚜껑이 열리자, 숨겨왔던 그림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날카로운 말, 부서진 약속, 오래된 울음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찔렀다.
그 모든 것이 나를 휘감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속에는 미세한 빛줄기가 있었다.
깊은 밤을 가르는 별빛처럼,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것.
그게 희망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굳이 열 필요 없는 건 두고 가라.”
하지만 때로는, 닫힌 상자 옆에서 평생을 도는 게 더 고통스럽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시선, 들리지 않는 속삭임.
그건 언젠가 너를 기다릴 거라고, 계속 부르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상자를 열어야만, 그 안의 어둠과 빛을 모두 꺼내야만 앞으로 걸을 수 있다는 걸.
상처를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고, 그 풍경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온기가 있다.
닫힌 채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온기.

아직도 당신 앞에는, 열지 않은 상자가 하나 있지 않은가.
그 안에는 아마도 눈을 돌리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밑바닥엔 작은 숨결이 고여 있을지 모른다.
그 숨결이, 당신을 다음 계절로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은, 그 뚜껑을 들어 올릴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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