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발밑이 사라지는 순간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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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이 꺼지는 순간이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서늘한 공기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뛰어들었던 그 굴처럼,
나도 종종 예고 없이 깊은 틈으로 떨어진다.

그곳에는 논리 대신 기묘한 법칙이 숨 쉬고 있다.
말하는 고양이는 웃으며 사라지고,
시계토끼는 늘 늦었고,
시간은 제멋대로 흐른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며,
한 모금의 물약이 나를 거인으로 만들었다가,
작은 문 안으로 겨우 통과할 만큼 줄어들게 한다.

이상한 나라는 사실 멀리 있지 않다.
하루아침에 닫혀버린 문,
어제의 웃음이 오늘의 침묵이 되어 돌아오는 사람들,
분명 똑같은 길인데도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나날들.
그 모든 것이 토끼굴 아래 펼쳐진 풍경과 닮았다.

앨리스는 그 세계에서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누구죠?”
그 질문은 상대를 향한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향한 메아리였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모습이 변해가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그녀는 계속 이름을 확인하고, 마음의 온도를 재어본다.
나 역시 그렇다.
세상이 뒤집히는 순간마다, 나는 묻는다.
이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나일 수 있는가.

이상한 나라는 불친절하다.
정답을 주지 않고, 대신 수수께끼를 건넨다.
그 속에서 앨리스는 눈을 단련한다.
겉모습보다 흐름을 보고, 규칙보다 본질을 본다.
변덕스러운 여왕 앞에서도,
길을 가로막는 문지기 앞에서도,
그녀는 끝내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다르지 않다.
정해진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어제의 상식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앨리스처럼 묻는 일이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어디에 있지?”
“나는 누구로 남고 싶은가?”

앨리스는 결국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눈빛은 예전과 다르다.
이상한 나라에서 배운 건 단순한 기이함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법,
닫힌 문 앞에서 다른 문을 찾는 습관이었다.

토끼굴은 어쩌면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다음번엔 겁내지 않고 뛰어들 수 있을까.
혹시 그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