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장| 산울림 밴드를 아시나요?

지금 당신의 마음에도 울림이 있다면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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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노래가 있다. 초록빛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니 벌써’, 형의 책상 서랍 속 낡은 카세트에 들어 있던 그 음반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처음엔 장난처럼 들렸다. 가사는 엉뚱했고, 목소리는 장난기 가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듣고 싶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뒤엉켜 흐르는 그 음악 안엔 어떤 마법 같은 울림이 있었다.

산울림을 아시나요.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세 형제가 만든 밴드다. 처음엔 가족끼리 즐기던 놀이 같았던 일이, 1977년 1집으로 세상을 바꿨다.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개구쟁이’, ‘불놀이야’… 그 노래들을 지금 다시 들어보면, 그 당시엔 얼마나 기이하고도 낯설게 들렸을까 싶다. 기성 음악과는 전혀 다른 사운드. 기획도 전략도 없이 그냥 ‘좋아서’ 만든 음악. 그게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다.

김창완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냥, 음악이 좋았어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우리가 좋았으니까 했죠.” 세 형제는 그렇게 작은 방 하나에서, 마이크 하나, 기타 한 대, 드럼 하나로 우주를 만들었다. 형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고, 동생은 드럼을 치며 따라 불렀고, 또 다른 동생은 베이스를 껴안았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합.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감각. 오글거리지 않는 애정. 그건 팀워크가 아니라 일종의 마법이었다.

산울림의 음악은 정제되어 있지 않았다. 실수가 많았고, 거칠었으며, 때로는 삐걱거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짜 같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들은 스스로 증명해 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음악에는 ‘연기’가 없었다. 꾸며낸 감정도, 억지로 끼워 맞춘 형식도 없었다.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이, 그 시대에는 너무도 낯설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아름답게 들린다. 어쩌면 그건 진짜라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산울림의 음악을 들으며 한 번도 겪지 못한 시절을 그리워했다. 청춘은 그런 것이다. 살아보지 않아도 그리워지는 시간. 가보지 않은 골목, 타보지 않은 자전거, 사랑도 이별도 모르는 열일곱의 방 안에서 그들의 음악은 그렇게 울려 퍼졌다. 산울림을 듣는다는 건, 그 시절의 감정을 내 안에 잠시 들이는 일이다. 그것은 애틋함이고, 설렘이고, 가슴속 어디엔가 저장된 아련한 조각들이다.

불행히도, 산울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 막내 김창익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산울림은 멈췄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해체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금도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들의 영향을 언급한다. 무대는 사라졌지만, 울림은 남았다. 그리고 김창완은 여전히 노래를 한다. 그는 조용히, 담담히 그 시절을 기억한다. 아마 그의 가슴속엔 여전히 두 동생이 함께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산울림을 아시나요. 그것은 단순히 밴드의 이름이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길은 곧 음악의 자유에 대한 선언이었고, 동시에 시대를 거스르는 감성의 증명이다. 지금 우리는 가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을 상상한다.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던 친구의 모습, 책상 아래 숨겨놓은 워크맨, 비 오는 날 빗물처럼 흘러내리던 기타 선율. 그 기억 속엔 늘 산울림이 있었다.

음악은 시간을 초월한다. 그리고 산울림은 그 증거다. 어떤 시대에 태어났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그들의 노래는 모두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다. 이상하게도 따뜻하고, 이상하게도 눈물 나게 만든다.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는 노래. 그게 바로 산울림이다.

당신은 산울림을 아시나요.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울리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