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가

붉은빛에 잠긴 거리에서

by Helia

도시의 밤은 늘 빛난다. 하지만 그 빛이 모두 환영을 주는 건 아니다. 홍등가의 불빛은 유난히 묘하다. 멀리서 보면 따뜻하게 깜빡이는 등불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빛 속에 미묘한 온도 차가 숨어 있다. 손끝으로 잡힐 듯 가까운 붉은빛이지만, 닿으려 하면 한 겹 유리 너머로 밀려난다.

이 거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소리였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구분되지 않는 음성들이 공기를 무겁게 흔들고 있었다. 담배 연기와 향수 냄새, 튀김 기름과 빗물 냄새가 뒤섞여, 시간의 감각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여기는 시계가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홍등가의 색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의 붉음은 마치 오래된 벽돌 같은 바랜 색이고, 밤의 붉음은 네온사인이 번진 채 살아 움직인다. 낮에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던 가게들이, 해가 지면 이름을 바꾸고 얼굴을 바꾼다. 간판의 글씨는 흐릿해도, 빛만은 선명하다. 그 빛은 이름보다 먼저 사람을 부른다.

그 불빛 아래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서두르고, 누군가는 망설인다. 어떤 이의 눈동자는 이곳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듯 담담하고, 또 어떤 이는 첫발을 들이는 초행자의 경계심으로 빛을 훔쳐본다. 표정만 보아도 그 사람이 찾으러 온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된다. 잊고 싶은 것, 확인하고 싶은 것, 혹은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온기.

홍등가를 걷다 보면 ‘이 빛이 정말 따뜻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빛은 따뜻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시간은 차갑게 식어 있는 듯하다. 마치 오래전 멈춘 난로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빛만 남아 있는 것처럼. 빛이 환하다고 해서 그 안이 모두 밝은 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의 홍등가는 더욱 인상적이다. 네온사인의 붉은빛이 빗방울을 타고 흐르며 바닥 위에 길게 풀어진다. 발걸음이 그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색은 일그러졌다가, 다시 번져 제자리를 찾는다. 빗물 위의 빛은 잡힐 수 없는 것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손에 남는 건 없다. 남는 건 오히려 ‘지나갔다’는 감각뿐이다.

이 거리에서 오래 머물면, 나 자신도 빛과 그림자 사이에 서 있는 기분이 된다. 관찰자이자 동시에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오고 가는 발걸음 속에는 묵인된 침묵이 있다. 침묵은 때로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묻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을 만든다.

홍등가의 빛은 거짓과 진실을 모두 품고 있다. 거짓은 그 빛이 만든 환상 속에서 팔리고, 진실은 그 빛의 바깥 어둠 속에서 숨 쉰다. 누군가는 그 이중성을 불편해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균형이 흥미롭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이 거리는 존재 이유를 잃을 것이다.

나는 이곳을 떠나며 가끔 생각한다. 만약 이 불빛이 꺼진다면, 이곳은 어떤 얼굴을 가질까? 간판이 사라지고 네온이 꺼진 뒤, 남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비로소 드러나는 건, 사람들의 맨얼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빛 속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덜 화려하고, 훨씬 더 솔직할 것이다.

홍등가는 나에게 ‘빛이 모든 걸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때로 빛은 가리고, 어둠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우리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에서 서성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