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빛으로 오늘을 세우다
지난날은 구겨 넣은 영수증 같다. 버리려 들수록 손끝에 더 달라붙는다.
나는 그 종이에서 오래된 잉크 냄새를 맡고, 이름 없는 장면들을 다시 읽는다.
잊고 싶었다. 그런데 잊을수록 더 또렷해졌다.
사진을 현상하듯 기억도 암실이 필요하다.
너무 밝으면 색이 날아가고, 너무 어두우면 형체가 사라진다.
나는 오늘의 어둠으로 어제를 씻기고, 남은 빛으로 윤곽을 세운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웃음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다른 페이지에서는 울음이 소금처럼 남는다.
그 둘이 뒤엉켜 한 장의 인화지가 된다.
어제의 결이 오늘의 초점을 정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게 지난날은 늘 불편했다.
사진을 찍을 때, 초점이 맞지 않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답답했다.
흐려진 이미지를 버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실패한 컷들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웃음소리,
정리했다고 생각한 눈물 한 방울이
다시 나타나 화소를 채운다.
마치 지워도 지워도 남는 잉크 번짐처럼.
올해 나는 어제를 증명하는 두 개의 책 등을 얻었다.
공저라는 표지 아래에서, 나의 문장은 타인의 문장과 체온을 나눴다.
그날, 지나간 시간들이 제본되어 손에 들어왔다.
후회는 발췌되고, 망설임은 각주로 내려가고, 남은 문장은 본문이 되었다.
나는 알았다. 지난날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문장으로 정리되는 것임을.
타인의 시선과 엮이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문장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내가 걸어온 길은 늘 한 장의 필름 같았다.
빛이 부족한 장면에서는 잡음이 많았고,
과도하게 노출된 순간에는 감정이 날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컷이 모여 한 권의 앨범이 되었다.
나는 그 앨범을 펼치며 배운다.
완벽하게 선명한 장면만이 남는 것은 아니다.
흔들린 사진, 삐뚤어진 프레임, 눈을 감아버린 인물.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시간이라는 증거가 된다.
시간은 수채화 같다.
한 번 번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그 번짐 속에서만 가능한 색의 층이 있다.
어제를 지우려 하면 흰 종이가 찢기지만,
그 위에 덧칠하면 전혀 새로운 색감이 생긴다.
나는 지난날을 덮어버리는 대신, 덧칠하기로 했다.
어제의 흔적을 살려 오늘의 빛을 얹는다.
그러면 실패도 그림자의 일부가 되고,
흉터도 질감이 된다.
밤마다 나는 내 안의 암실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기억은 필름처럼 물에 젖어 있다.
차갑고 축축한 시간 속에서 나는 장면들을 건져 올린다.
때로는 빛이 새어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온전히 어둠만이 감싼다.
암실에서 나온 사진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다.
눈부신 웃음은 희미하고, 사소한 눈길은 또렷하다.
그 불일치 속에서 나는 배운다.
기억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남겨둔 것들이라는 사실을.
길을 걷다가도 지난날은 불쑥 다가온다.
골목 벽에 스친 그림자처럼,
창문에 비친 옛 얼굴처럼.
나는 순간 움찔하며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
나는 그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 속에서 여전히 숨 쉬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어제는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는 동반자가 된다.
어느 날, 창문에 기대어 노을을 바라보았다.
붉은빛이 유리 위에서 무수히 갈라지며
방 안을 불태우듯 번졌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지난날도 이 빛과 같다는 것을.
한순간에는 뜨겁게 아프고,
다른 순간에는 부드럽게 물든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잔광이 오늘의 벽을 물들이고,
내일의 창을 열어젖힌다.
어제의 나는 자주 흔들렸고,
오늘의 나는 아직도 불안하다.
그러나 그 모든 진동이 나를 단단하게 한다.
유리잔이 깨져야 빛이 퍼지듯,
나는 금이 간 자리에서 새로이 빛난다.
지난날이 나를 부른다.
나는 대답한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너의 그림자로 오늘을 짓고,
너의 빛으로 내일을 세운다.”
------------'-------------
Q&A.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지난날을 세 단어로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댓글로 남겨주시면, 서로의 앨범을 한 장씩 펼쳐보듯 나눌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