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잦아든 뒤의 호흡
그날, 세상이 조금 기울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은 빠르게 변했고, 말투엔 미묘한 긴장과 안도가 교차했다. 그러나 내 안은 고요했다. 마음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요동친 끝에 모든 물결이 잦아든 상태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덤덤했던 건 아니다. 예전의 나는 바람 한 줄기, 빛의 기울기, 사람 목소리의 떨림에도 쉽게 반응했다. 비가 오기 전의 눅눅한 냄새를 맡으면 창문을 닫았고, 말끝이 부서진 친구의 표정을 보고 불안을 읽었다. 변화의 징후를 붙잡아 미래를 예측하려 애썼지만, 예측은 자주 빗나갔고 그만큼 실망은 깊어졌다.
어느 봄날, 연인과의 마지막 통화를 기억한다. 끊기 직전까지 평범한 대화를 나눴지만, 그 뒤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유조차 들을 수 없었고, 답 없는 메시지가 쌓일수록 분노보다 무력감이 앞섰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애써 붙잡아도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감정은 소용돌이처럼 몰아쳤으나, 결국 가라앉았다.
회사에서는 더 노골적인 일이 있었다. 회의실의 하얀 조명 아래, 내가 주도한 아이디어가 발표됐다. 사람들의 박수가 이어졌지만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대신 “팀의 노력”이라는 한마디가 모든 것을 덮었다. 박수 소리가 벽에 부딪혀 잦아들 때, 내 안에 차갑고 얇은 얼음이 형성됐다. 예전 같으면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겠지만, 그날은 침묵을 택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덤덤해지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은 내 표정을 보고 묻는다. “왜 그렇게 반응이 없어 보여?” 그러나 덤덤함은 무심함과 다르다. 무심은 애초에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지만, 덤덤함은 깊이 겪은 사람이 도달하는 숨결이다. 오래 사용한 찻잔에 남은 얼룩처럼, 지울 수 없지만 새롭지도 않은 흔적을 굳이 닦아내지 않는 상태. 거기에는 애정과 상처가 함께 응고돼 있다.
한때 나는 모든 순간이 절정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라야 하고, 이별은 칼날처럼 베어야 하며, 성취는 축제처럼 환해야 한다고. 그러나 불꽃은 쉽게 꺼지고, 칼날은 오래 상처를 남기며, 축제는 하룻밤이면 끝났다. 그 뒤에 남는 건 텅 빈 허기였다.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절정을 찾아 헤맸고, 그러다 더 깊이 지쳤다.
이제는 안다. 삶의 대부분은 절정과 절정 사이의 긴 평지다. 그 평지를 견뎌 걸을 줄 아는 사람이 절정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덤덤함은 그 평지를 걷는 힘이다. 감정은 여전히 내 안을 드나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심장이 조용히 높아지고, 부당함을 보면 분노가 번진다. 그러나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물결이 잠시 호수를 흔들다 가라앉듯, 나는 감정을 맞이하고 흘려보낸다.
때로 덤덤함은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크게 웃고 울며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데, 나는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본다. 그들의 뜨거움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 끝에 찾아올 허무를 알기에 거리를 둔다. 그 거리는 내가 무너질 때 스스로를 붙잡아줄 최소한의 안전선이다.
내게 덤덤함은 말린 꽃과 같다. 한때는 향기와 색으로 눈부셨지만, 이제는 형태만 남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간이 응축돼 있다. 누군가에겐 죽은 꽃이지만, 나에겐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혹은 겨울나무처럼, 가지 끝의 잎이 모두 떨어져도 뿌리 속에는 봄이 숨어 있다. 겉은 고요하지만, 속에서는 다시 움트는 생명이 준비되고 있다. 덤덤함이란 바로 그 숨은 생명과 닮아 있다.
세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힌다. 뉴스와 소문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사람들의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린다. 그 속에서 덤덤함은 나를 지탱하는 닻이 된다. 변화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발 딛는 자리를 지켜준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무겁게 살면 힘들지 않아?” 하지만 무거움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다. 나는 이제 가벼움보다 무게를 택한다.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쳐도 그 자리에 버티는 무게를.
덤덤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 언젠가 평지가 끝나고 또 다른 절정이 찾아온다면, 나는 그 순간을 더 깊이 음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절정이 지나간 후에도 다시 평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덤덤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덤덤한 내가, 가장 나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