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돌아온 날, 그 빛이 남긴 그림자
그날, 태극기는 깃대보다 먼저 사람들의 심장 위에서 펄럭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 매미의 울음이 하늘을 찢고, 숨죽였던 한반도 위로 빛이 스며들었다. 골목마다 사람들은 숨겨둔 깃발을 꺼내 들었고,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얼굴들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햇빛은 눈부셨고, 바람은 뜨겁게 살을 스쳤다.
이 빛은 결코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36년, 짙은 그늘이 땅과 하늘을 덮었다. 1910년의 굴욕 이후, 교실 칠판에는 왜곡된 역사만이 남았고, 입속 언어마저 가위로 잘리듯 금지되었다. 이름까지 바꾸라는 명령이 내려오던 시절, 할아버지는 어린 날 교정에서 몰래 한국어를 쓰다 회초리를 맞았다. 그날의 바람결, 흙먼지 냄새, 회초리 끝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도 기억 속에 스민다고 했다.
청춘은 광산의 어둠 속으로, 총성이 울리는 전선으로, 혹은 군수품 공장의 쇳가루와 땀 냄새 속으로 사라졌다. ‘황국신민’이라는 가면 아래, 삶의 빛은 조금씩 꺼져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잉크처럼 번지는 저항은 꺼지지 않았다. 만주와 연해주, 상하이와 하와이, 그리고 고향의 산과 들에서, 누군가는 총을 들고, 누군가는 펜을 쥐고, 누군가는 학교를 세워 언어를 지켰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외침은 수없이 밟혔지만, 그 메아리는 골짜기를 넘어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경성역 광장에는 여름 햇빛이 하얗게 쏟아졌고, 사람들은 물결처럼 모였다. 기차 지붕 위의 청년이 팔을 흔들고, 담장 위 소년이 숨이 찰 때까지 목청을 높였다. 노인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고, 어떤 이는 조상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스무 살이던 외할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녀는 인파에 밀려 경성 한복판에 섰고,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부둥켜안았다. “그날은 모든 얼굴이 하나였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꼭 덧붙였다. “하지만 기쁨만 있진 않았단다.”
환호 뒤엔 공허가 드리웠다. 어떤 이는 가족을 찾지 못했고, 어떤 이는 돌아왔지만 고향이 분단선 너머에 있었다. 미군과 소련군이 그은 38선은 지도 위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금을 남겼다. 해방은 새로운 이별을 데려왔다.
광복절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한 나라가 자기 이름을 되찾은 날이며, 우리가 ‘한국인’ 임을 잊지 않게 하는 날이다. 하지만 해마다 이 날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다. 태극기를 거는 집은 드물고, 8월 15일은 일부에겐 그저 여름의 한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언어로 시를 쓰지도,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스마트폰 자판 속 한글, 간판의 글씨, 아이들의 동요까지 — 모두가 피와 눈물이 만든 선물이다.
광복은 과거의 박제된 단어가 아니다. 아직도 진정한 해방은 현재진행형이다. 불평등, 차별, 갈등,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분단. 자유와 평등은 지켜내야 할 빛이다. 광복절은 ‘기억’이 아니라 ‘계승’의 날이어야 한다. 과거를 기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언론의 숨을 지키고, 약자의 손을 잡으며, 다른 생각을 품는 것 — 그것이 지금 시대의 광복운동이다.
언젠가 남과 북이 같은 깃발 아래 서는 날, 우리는 또 하나의 광복을 맞이할 것이다. 그날의 햇빛은 1945년처럼 눈부시고, 바람은 그때처럼 뜨겁게 불 것이다.
그 해 여름의 태양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굶주린 배를 덥히고, 굳은 심장을 녹이며, 고개 숙인 목덜미에 햇살을 얹어주었다. 그 빛은 여전히 머리 위에 있지만, 무심히 흘려보내면 사라질 수 있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빛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광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이 모이면, 그 빛은 다시 세상을 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