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지친 당신에게,

꿈이 건네는 작은 위로

by Helia

현실은 종종 발목을 잡는 무쇠추 같고, 꿈은 자꾸만 손끝에서 흩어지는 새처럼 멀어진다. 나는 그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한다. 눈을 뜨면 세상은 고요하다. 출근길도 없고, 부름을 재촉하는 상사도 없다. 하지만 고요는 자유가 아니라 압력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어떤 공부를 이어가야 하는가, 어제의 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은 채찍이 되어 등 뒤를 후려친다. 백수라는 단어는 남에게는 가볍게 던지는 농담일지 모르나, 내겐 삶의 무게를 품은 낱말이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길게 늘어진 고무줄 같아 방향을 잃게 하고, 집중과 산만이 번갈아 내 팔을 잡아끈다. 문장 하나가 나를 구원하기도 하지만, 커서만 깜빡이는 빈 화면은 나를 쉽게 무너뜨린다. 어제는 허무하게 지웠던 한 줄이 오늘은 전부가 되고, 그 한 줄로 나는 겨우 버틴다.

그래도 매일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앉는다는 행위가 곧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고, 비로소 숨이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숫자로 계량된다.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공과금, 마트의 계산대에 찍히는 금액, 냉장고 문을 열 때 마주하는 유통기한, 달력의 빈칸이 주는 불안. 가만히 있어도 생활은 무너진다. 빨래를 널지 않으면 눅눅한 냄새가 방을 잠식하고, 식재료를 챙기지 않으면 끼니가 흔들린다. 하지만 그 평범한 반복이 꿈을 불러낸다. 책장을 넘기다 심장에 못처럼 박히는 문장을 발견하면 손끝이 저릿하고, 동네를 돌다 하늘의 색이 층층이 쌓여가는 걸 보면 가슴이 열리듯 시야가 확장된다. 꿈은 웅장한 설계도가 아니라 깜박이는 불빛처럼 순간적이다. 그 작은 불빛 하나가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어둠 속에서 켜진 촛불처럼, 나는 다시 문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꿈을 허황되다 말하지만, 역사를 흔든 것은 언제나 터무니없는 상상들이었다. 인간이 달에 닿겠다고 외쳤을 때 세상은 비웃었지만 결국 발자국이 찍혔다. 누군가의 좁은 부엌에서 시작된 요리가 도시의 문화를 바꾸기도 했다. 내게도 그랬다. 버킷리스트 한쪽에 ‘책 출간하기’라고 적고도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현실이 비웃을까 두려웠다. 원고는 수없이 구겨졌고, 이야기는 길을 잃었으며,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를 해고했다가 다시 채용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자리에 앉았다. 앉는 일은 나 자신에게 도장을 찍는 계약이자, 어제 실패한 나를 오늘 고용하는 재계약이었다. 빈 문서는 사표가 아니라 초대장이었고, 나는 번번이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은 불시에 찾아왔다. 인물의 동기가 내 오래된 상처와 겹쳐질 때, 문장이 체온을 얻어 스스로 걸어 나올 때, 내 삶과 글이 거울처럼 마주할 때였다.

올해, 그 기다림 끝에 소망 하나에 굵은 동그라미를 그릴 기회가 찾아왔다. 버킷리스트에 적힌 ‘책 출간’은 공저로 두 권을 내면서 현실이 되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손에 닿는다는 단순한 문장이, 내 손끝에서 체온을 가진 종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오래 굳어 있던 세상이 기울듯 다른 각도로 열렸다. 누군가의 서가에 꽂힐 책 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현실은 축포를 터뜨리지 않는다. 초판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해서 삶의 난이도가 쉬움으로 바뀌진 않는다. 여전히 내일은 불확실하고, 독자는 보이지 않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심사위원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현실과 꿈의 거리는 줄었다 늘었다 하며, 때로는 포개지고 때로는 멀어진다. 꿈은 현실을 미세하게 밀어내며 길을 만들고, 현실은 꿈의 발목을 잡아 더디게 만든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발은 방바닥을 딛되, 눈은 창밖의 하늘을 좇아야 한다. 오늘의 설거지를 끝내고 내일의 문장을 준비하는 일, 생활의 소음을 지우지 않은 채 사유의 문을 여는 일, 생존과 창작을 동시에 붙드는 일. 나는 생계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생계는 꿈을 떠받치는 기초공사이고, 꿈은 생계를 견디게 만드는 조명이다. 둘 중 하나만 꺼져도 방은 어둡다. 낮에는 자료를 읽고 메모를 모으며, 문체의 높낮이를 다듬는다. 밤에는 허공에서 인물을 불러내어 대사를 입히고, 배경을 부여한다. 실패는 체온을 바꾼다. 자주 넘어진 흔적은 문장을 단단하게 만들고, 버려진 단어들은 돌아와 다른 문장을 구한다.

문학은 결국 실패의 기록을 쌓는 일인지도 모른다. 실패가 많아질수록 다음 문장의 확률이 커진다. 나는 이 진실을 늦게 배웠다. 예전엔 결과만이 나를 구원한다고 믿었으나, 이제는 과정이 나를 구한다는 걸 안다. 하루의 농도는 성과가 아니라 몰입으로 측정된다. 몰입은 남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를 움직인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문장으로 출근한다. 타임카드는 없고 월급날도 없지만, 나는 문장에서 임금을 받는다. 그 임금은 통장에 남지 않지만, 체온과 시선과 호흡의 방식으로 저장된다. 때때로 불안이 찾아와 묻는다. 이 길이 옳은가,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그럴 때마다 창문을 연다. 멀리 구름이 옮겨가는 속도를 눈으로 세고, 가까이 밥솥이 내뿜는 소리를 귀로 잰다.

삶은 멀리와 가까이를 동시에 계측하며 이어진다. 이상과 생존, 서사와 생활, 그 사이에 내가 있다.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고 함께 들고 가는 일이 성숙이라면, 나는 아직 그 길을 배우는 중이다. 배움은 언제나 느리고, 느림은 종종 창피하지만, 느린 걸음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느리게 걸으면 노을의 색이 층위로 갈라져 보이고, 느리게 읽으면 문장 사이에 숨은 호흡이 드러난다. 세상은 속도를 재촉하지만, 문장은 때로 느린 자의 편을 든다. 느림은 꿈의 통역사다. 꿈의 언어는 속도가 아니라 밀도이기 때문이다. 밀도는 반복 속에서 생긴다.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 날 문장이 나를 먼저 부른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현실을 견뎌낸 덕분에 꿈이 있었고, 꿈을 꿨기에 현실을 버틸 수 있었다는 오래된 진리를.

그래서 내일도 같은 자리에 앉을 것이다. 공저로 두 권을 내놓은 올해가 결론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서문의 끝자락에 새겨진 첫 문장 같다. 도착이 아니라 도달의 연습, 소유가 아니라 연결의 증명일 뿐이다. 언젠가 단독으로 내 이름만 새겨진 표지를 쥐게 된다면, 그 순간에도 나는 오늘의 방과 오늘의 끼니와 오늘의 설거지를 잊지 않을 것이다. 꿈은 현실 위에만 서고, 현실은 꿈과 함께일 때 가장 견딜 만하다. 그러니 나는 내 속도로 걸어갈 것이다. 시간표가 없어도, 성과표가 없어도, 나만의 연차와 별점을 매길 것이다. 두려움이 어깨를 짓눌러도, 기대가 발목을 헛디뎌도,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는 책 출간하기였는데, 공저로 두 권이나 냈으니 이룬 셈이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꿈은 곧 현실이 되니까. 그리고 그 현실은 또 다른 꿈의 초대장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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