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씨앗과 흙, 불씨와 장작

by Helia

결혼은 환상보다 계약에 가깝다. 처음엔 반짝이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만으로는 방을 덥힐 수 없다. 장작과 기름, 즉 가치관과 태도가 함께해야 온기가 유지된다.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고지서는 매달 찾아오고, 냉장고는 스스로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서로를 끌어안아도 배고픔은 가시지 않는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건 설레는 감정보다 생활을 바라보는 눈이다. 결혼은 ‘가치관의 집’ 위에 세워진 건물이다. 기초가 삐뚤면 지붕은 비를 막지 못하고, 벽은 금세 갈라진다.

사랑이 지속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길면 3년, 짧으면 3개월.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은 눈부시지만, 불빛이 사라진 뒤 남는 건 어둠과 침묵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서로의 습관, 생활 방식, 돈을 쓰는 태도,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다. 만약 가치관이 다르다면, 불빛이 사라진 뒤엔 오직 갈등만 남는다.

하루는 소소한 습관 때문에도 무너진다. 한쪽은 절약을 미덕이라 믿고, 다른 한쪽은 소비를 삶의 즐거움이라 여긴다면 같은 지갑은 전쟁터가 된다. 자유를 원하는 이와 안정을 바라는 이는 결국 서로에게 족쇄가 된다. 처음엔 사랑이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랑은 서로를 묶는 굴레가 되어버린다.

사랑은 무가치한 걸까? 아니다. 사랑은 씨앗이다. 하지만 씨앗은 흙이 있어야 자란다. 흙이 척박하면 아무리 싱싱한 씨앗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결혼 생활에서 사랑은 불씨이고, 가치관은 장작이다. 불씨는 시작일 뿐, 장작이 쌓이지 않으면 방은 금세 식어버린다.

많은 이들이 착각한다. 사랑이 모든 갈등을 이겨낼 거라고. 그러나 갈등을 이기는 건 사랑이 아니라 태도다. 차이를 이해하려는 마음, 협력하려는 의지, 타협과 조율의 기술. 결국 결혼은 비슷한 가치관 위에서만 버틸 수 있다. 혹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힘이 있을 때만 지속된다. 사랑은 ‘왜 시작했는가’를 말해주지만, 가치관은 ‘어떻게 끝까지 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결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결국 하나의 답으로 모인다. 경제력, 성격, 생활 태도, 부모와의 관계, 모두 가치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두 사람이 같은 길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언젠가 갈림길에 선다. 한 사람은 동쪽을, 다른 이는 서쪽을 가리킨다면, 결국 손을 놓게 된다. 아무리 사랑했어도.

그렇다고 조건만 맞으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조건만 바라보는 결혼은 따뜻함 없는 계산서에 불과하다. 사랑이 빠진 결혼은 건조한 계약이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사랑은 문을 열고, 가치관은 문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집은 기울어진다. 사랑 없는 결혼은 공허하고, 가치관 없는 결혼은 위태롭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와 밥을 먹을지, 어디에 돈을 쓸지, 어떤 미래를 그릴지. 그 선택의 축이 바로 가치관이다. 사랑은 선택에 빛깔을 더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건 가치관이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닮은 가치관이 있거나, 다름을 존중할 힘이 있어야 한다. 결혼은 동화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서사다. 그 서사를 끝까지 함께 써 내려갈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책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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