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장| 일요일 저녁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정들

by Helia

추천 클래식

라흐마니노프 – 보칼리제(Vocalise), Op.34 No.14


일요일 저녁은 언제나 배신자 같다.
주말의 자유를 빼앗아 가고, 월요일의 그림자를 불러온다.
아침까지만 넓게 펼쳐져 있던 시간은 어느새 구겨진 종이비행기처럼 작아지고, 그 위엔 ‘해야 할 일’이라는 낙서가 빽빽하다.
놀이터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이 금세 지워지듯, 웃음과 여유는 쉽게 흩어진다.

창밖 노을은 평일보다 짧게 느껴진다.
낮과 밤이 맞닿는 순간마다 나는 어린 시절 숙제를 미루던 장면을 떠올린다.
미완성 공책 위에 노을빛이 번지고, 게으름과 후회가 뒤섞여 눅눅하던 공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릴 적 일요일 저녁은 텔레비전 시그널 음악과 함께 찾아왔다.
온 가족이 웃으며 저녁을 마친 뒤, 드라마 예고편이 흘러나오면 마음은 금세 무거워졌다.
‘벌써 다 갔어?’라는 말이 입술에 맴돌았고, 그때 나는 일요일 저녁이란 끝과 시작이 겹쳐 있는 시간임을 배워버렸다.

성인이 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일요일 저녁은 숙제를 남긴다.
다만 그 숙제는 더 이상 수학문제가 아니라 삶의 과제다.
쓰지 못한 원고, 지키지 못한 약속, 다짐뿐인 공부와 운동, 미뤄둔 자기 관리.
일요일 저녁은 그것들을 꺼내 내 앞에 길게 늘어놓는다.
나는 ‘내일의 나’를 그려보지만 동시에 ‘오늘의 게으름’을 후회한다.

거리도 이 시간의 무게를 아는 듯하다.
북적이던 카페는 빈자리가 늘고, 공원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돌아가며, 시장의 불빛은 하나둘 꺼진다.
남은 상인들의 목소리는 길게 늘어지고, 도시 전체가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 준비는 설렘보다 체념에 가깝다.

이상하게도 그 쓸쓸함 속에서 묘한 위로가 찾아온다.
창문마다 하나씩 켜지는 불빛은 작은 안부처럼 번지고, 늦춰진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낀다.
불안과 아쉬움조차 이 시간에는 아름다운 색으로 빛난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저녁을 글쓰기와 닮은 순간이라 여긴다.
주말 동안 흩어진 문장들이 이 무렵이면 고개를 들고, 메모 속 잠든 아이디어들이 노을빛을 타고 되살아난다.
나는 펜을 들어 그 목소리를 붙잡으려 하지만, 끝내 다 적지 못한다.
글쓰기도 일요일 저녁도 결국 붙잡을 수 없는 빛이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작별 인사’의 순간으로 삼는다.
주말에게 고맙다고, 잘 쉬게 해 주어 감사하다고, 그리고 이제 떠나보내겠다고.
그렇게 인사하면 일요일 저녁은 두려운 적이 아니라 온전한 의식이 된다.

결국 일요일 저녁은 배신자이자 위로자다.
끝과 시작, 자유와 책임이 교차하는 회의 시간이자 삶의 균형을 시험하는 거울이다.
그 균형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창문 너머 마지막 노을이 사라지고,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나는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는다.
여전히 미완성의 글이 나를 기다리지만 두렵지 않다.
일요일 저녁 무렵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일요일 저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쓸쓸함일까요, 체념일까요, 아니면 조용한 위로일까요.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