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날, 나는 울 것이다
추천 클래식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 III. Poco Allegretto
내일모레, 나의 인생은 새로운 숫자로 불린다. 삼에서 사로 넘어가는 일, 그저 숫자 하나 바뀌는 것뿐인데 왠지 어깨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더 얹힌 것만 같다. 마치 긴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발 밑이 꺼져내리는 순간처럼, 그 작은 변화가 마음을 흔든다. 나는 그날이 오면 눈물이 터질 것 같다. 이유는 없다. 수도꼭지가 낡아 제멋대로 물줄기를 쏟아내듯, 그저 왈칵 쏟아질 것 같다.
스무 살에 맞이한 성인은 달랐다. 세상이 처음으로 내게 자유를 허락한 순간이었다. 서른은 또 달랐다. 인생의 서막을 넘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 같았다. 하지만 앞자리 숫자가 네로 바뀌는 일은 다르다. 이번 전환은 새 출발이 아니라 중턱을 넘었다는 자각으로 다가온다. 그 인식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서늘해지고, 무게는 더욱 선명해진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익숙한 얼굴이지만, 눈가와 입가에 스며든 잔주름은 나이를 숨기지 못한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놀라지 않을까. “벌써?”라는 탄성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빠르고, 그 흐름 앞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순간을 앞두고 있자니 과거가 자꾸만 떠오른다. 이루지 못한 꿈, 놓쳐버린 기회, 어설픈 선택들. 마음속에 남은 아쉬움은 모래알처럼 쌓여 여전히 발밑을 스친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그러나 후회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길은 내 발자국으로 이어져 지금의 자리에 닿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날조차 결국은 내 발걸음을 이끄는 일부였다.
다가올 나이를 떠올리면 이유 모를 울컥함이 몰려온다. 억울한 일도, 특별히 슬픈 일도 아닌데도 그렇다. 아마 그 눈물은 내게 보내는 위로일 것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라는 말이 물줄기로 바뀌어 흘러내리는 것 아닐까. 누군가를 향한 눈물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에게 쏟아낼 눈물. 인생의 절반을 건너온 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세례 같은 눈물일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각자의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안정된 직업, 가족, 성취한 목표들.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나는 내 자리를 되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놓쳤으며,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답을 찾기 어렵지만,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내 삶을 깊게 만들어주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젊음은 언제나 뒤돌아보면 빛난다. 그러나 그 빛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색깔이 변했을 뿐이다. 스무 살의 빛이 화려한 네온사인 같았다면, 지금의 빛은 잔잔한 등불 같다.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따스하게 타오른다. 그 불빛은 길을 잃은 나를 다시 데려오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고, 이루지 못한 것들은 산처럼 쌓여 있다. 그럼에도 이 나이는 나를 조급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달려온 날들이 있었으니,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또 다른 문이 열릴 거라고.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드는 물음은 단순하다. 나는 나로서 충분했을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흘러나올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위로라는 것. 그 눈물이 어깨를 짓눌러온 무게를 씻어내고, 내 발걸음을 다시 가볍게 만들 것이다.
곧 다가올 그날, 나는 분명 울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다. 울고 난 뒤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짐할 것이다. 인생의 다음 장도, 여전히 나답게 살아가겠다고. 그 다짐이 새로운 등불이 되어, 또 다른 길 위에서 나를 비춰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순간,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될까. 그 눈물은 회한일까, 위로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까.